<불온한 당신한줄 관람평


송희원 | 광기와 재난에 맞서 "난 이렇게 살아"라고 외치는 사람들

이현재 | 당신을 비추는 거울. 그것은 벽이고, 어쩌면 문.

박영농 | 불온 혹은 불안

이지윤 | 불온하지도 온당하지도 않은 그저, 당신

김은정 | 내가 '나'이기 위한 조금은 어지러운 나열






 <불온한 당신> 리뷰: 불안한 당신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영농 님의 글입니다.



1.

우선 영화의 전개를 살펴보자. 영화는 ‘바지씨’ 이묵의 일상에서부터 출발한다. 이묵은 카메라 앞에서 20세기 한국의 성소수자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말한다. 그리고 그를 ‘선배님’이라 호칭하는 감독 이영은 지극히 담담하게 그 모습을 담는다. 동네 구멍가게 앞에서 이웃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소박한 반찬에 끼니를 때우는 지극히 담담한 그 모습. “남자여, 여자여?” 동네 어르신들의 호기심 어린 물음에 이영은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런 걸 왜 물어봐” 이묵은 대신 대답한다.




 

2.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족속들처럼 여겨지는 성소수자들. 그들의 출현은 과연 시절이 수상해 그런 것일까. 이묵은 20세기의 서울 곳곳에 모여 살았던 성소수자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성소수자는 요즘에서야 생겨난 족속들이 아니다. 언제나 존재했다. 그들은 나름의 공동체를 형성해왔으며 주기적으로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소박한 반찬에 끼니를 때우는 등 지극히 ‘주류’적인 모습으로 존재해왔다. 그들의 후배를 자처하는 감독 이영은 카메라를 매개로 강제된 단절과 공백을 간결한 필치로 메우고 있다.

 

3.

20세기 국가는 성소수자의 친목을 용납하지 않았다. 여자 깡패들이 모여 데모를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국가는 불안했다. 데모가 불안했고, 데모로 이룩될 민주주의가 불안했고, 민주주의 이후 모두의 존재가 함부로 부정될 수 없는 그 세상을 불안해했다. 해소되지 않는 불안은 명확한 적을 필요로 하고, 그들을 제거함으로써 불안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라는 환상을 필요로 한다. 모두의 존재가 함부로 부정될 수 없는 세상을 겨냥한 불안은 빨갱이라는 적을 설정했고, 빨갱이를 제거하면 모든 불안이 해소될 것이라 믿도록 했다. 존재를 부정당하지 않길 바랐던 성소수자들은 자연스레 빨갱이가 되었고, 해소되어야만 했다.

 




4.

카메라는 21세기의 한국으로 시선을 돌린다. 박근혜 정권을 비호하는 시위가 한창이다. 성소수자들 때문에 나라가 시끄러워졌고, 나라를 시끄럽게 하려는 목적은 적화통일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므로 따라서 성소수자들은 빨갱이라는 정식이 여전히 유효하다. 제거의 대상인 성소수자들은 한편 가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섹스에 중독된 정신병자들은 충분히 가엽고 다시 ‘주류’로 수복해야할 대상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성소수자’라는 정식은 나름 일관성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또한, 한국의 20세기와 21세기는 일관성이 있어 보인다. 대를 이어 통치하고 있는 왕을 보니 더욱 그럼직하다.

 

5.

카메라의 시선이 향하는 혐오 시위의 현장에는 이전 장면에서도 보았던 얼굴들이 반복 등장한다. 국정원 불법 대선 개입 조사 반대, 세월호 특조위 연장 반대, 퀴어문화축제 반대 등 다소 거리감이 있는 개별 주제들을 총 망라하는 이들이다. 이들의 주장에서 공통되는 키워드는 ‘반대’이다. 얼마 전 알게 된 사실을 덧붙이자면 그 모든 반대의 기저에는 청와대의 보조금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세금으로 반대를 샀다는 걸까. 참 일관적이다.

 




1-1.

불안은 일관적이다. 불안은 일관적으로 불온을 만든다. 불온한 당신이 있다면, 불안한 당신이 있다는 뜻이다. 당신은 불온한가 아니면 불안한가. “불온혀, 불안혀?” 이 호기심 어린 물음에 누군가는 어쩔 줄 몰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런 걸 왜 물어봐, 누군가의 누군가는 대신 대답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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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리브 올리브한줄 관람평


송희원 | 다시 이 땅에 올리브 나무를

이현재 | 올리브 나무 사이로, 사람이 산다

이지윤 | 올리브 나무를 심는 사람들

김은정 | 정의란 '뭣'인가?






 <올 리브 올리브> 리뷰: 다시 이 땅에 올리브 나무를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희원 님의 글입니다.



점령은 삶을 파괴했다. 모든 것이 금지되었다. 자신의 땅에서 내쫓겼고, 다시 그 땅에 들어가기 위해선 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 부당한 상황에 저항하자 일상을 영위하기 힘들어졌다. 어떤 이들은 죽었고 살아남은 자들은 감옥에 갔다. 여자들은 일을 구하지 못하는 남자들을 대신 해 직장을 얻어야 했다. 이스라엘 점령으로 자신의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 고향으로부터 이방인이 되어버린 사람들. 바로 <올 리브 올리브> 팔레스타인인들의 이야기다.  





서안지구 나블루스 주의 작은 마을 세바스티아에 거주하는 위즈단은 워킹맘으로 평범하지만 분주한 일상을 보낸다. 위즈단의 부모님은 오래전부터 올리브 나무를 수확해 10남매를 키워냈다. 올리브 나무는 팔레스타인 인구 70%의 주 수입원인 동시에 그들의 민족성과 역사를 상징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점령으로 그 올리브 나무가 뿌리 뽑힐 위기에 처했다. 선조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올리브 농장은 이스라엘 점령 하에 일 년에 단 열흘만 통행이 허락된다. 우물을 파는 것마저도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접경지 주민들의 집과 사원이 피해를 당했다. 농경지 주민들 가옥 역시 공격으로 무너져 이제 그들은 구호단체 텐트에서 생활하며 가축을 돌본다.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인들의 통행의 자유를 거두어가는 동시에 그들을 ‘지붕 없는 감옥’에 가둬놓고 숨통을 조인다. 인티파나(intifada, 이스라엘의 통치에 저항하여 팔레스타인인들이 일으킨 봉기) 때 자식을 세 명 잃은 무함마드 할아버지와 그 통한으로 온갖 병을 얻은 할머니. 반란 운동에 참여하다 친구를 잃고 11년 동안 감옥에서 젊음을 보내야 했던 알리. 역시 인티파나에 참여했다가 일자리를 잃고 지금은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핫산. 그리고 영화 내레이션을 맡아 자신의 아이들과 남편의 일상을 들려주는 위즈단까지. 카메라는 그동안 말해지지 않았던 팔레스타인 개개인의 삶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본다. 





가족 프로덕션 ‘상구네’의 김태일, 주로미 감독은 아들 상구, 딸 송이와 함께 팔레스타인에 갔다. 약 2년간 현지인들과 함께 살며 가까이서 촬영했기에 그들의 힘 있는 증언 그대로를 담아낼 수 있었다. 그들의 증언에는 분노와 한이 서려 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기록되지 않은 이들의 기억은 그렇게 <올 리브 올리브>에 차곡차곡 담겼다.  





팔레스타인인은 다음 세대에게 그들의 역사와 현재의 참상을 알리려 노력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기억된 과거뿐이기에 자신의 아이들에게 필사적으로 말하고 또 말하는 것이다. 수많은 죽음과 희생을 기억하고 또 알려서 그들의 잃어버린 땅을 다시 찾아야 한다고. 결코, 이 역사를 잊어선 안 된다고. 비록 그들이 가진 유일한 무기는 오직 구호와 돌멩이뿐일지라도 말이다. 어쩌면 감독은 그 모습을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직접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루에 다섯 번 예배시간을 알리는 소리처럼 그들의 고통스러운 일상은 계속된다. 하지만 그들이 행복하게 살고 싶은 곳 역시 고통스러운 바로 이곳, 점령 받고 있는 팔레스타인 땅이다. 높은 분리 장벽 앞에서 자신의 아이들에게 더 이상 좌절을 안겨주지 않기 위해 그들은 다시 이 땅에 올리브 나무를 심고 행복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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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밍 보이즈한줄 관람평


송희원 | 청년들 땀으로 꿈을 경작하다

이현재 | 세계를 돌고 돌아 얻은 단순한 답변. 단순하기는 어렵다.

이지윤 | 삶도 영화도 유기농

김은정 | 농사 때문만은 아니야





 <파밍 보이즈> 리뷰: 농사 때문만은 아니야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은정 님의 글입니다.



농사를 위해 뭉친 세 청년들은 해외에서는 어떻게 농사를 짓는지, 또 해외의 젊은 외국의 농부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몸소 체험하기 위해 배낭 하나 메고 무작정 여행길에 오른다. 그들은 농사일을 배우고 돕는 대신에 숙식을 제공받으며 장장 2년간의 여행을 마친다. 98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다큐멘터리 영화인 <파밍 보이즈>가 내내 관객을 붙잡은 비결을 생각해보았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만들었을 때 무척이나 흥미로운 주제를 가져간다. 무전여행이 바로 그것이다. 여행이라는 요소만으로 영화는 이국적인 풍경, 낯선 사람이라는 장치를 통해 우리들의 시선을 끈다. 여기서 ‘돈이 없다’는 상황이 더해지며 이야기는 보다 자극적으로 변화한다. 돈이 없는 여행객들이 마주할 수밖에 없는 난감한 상황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차를 타고 이동하기 위해 몇 시간씩 히치하이킹을 한다든지, 그 마저도 녹록치 않아 비오는 늦은 밤까지 무작정 걸어야 한다든지, 풀숲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한다든지. 이렇게 무전여행이라는 주제만으로 극적인 효과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마치 흥미진진한 어드벤처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또 다른 흥미로운 주제는 바로 이들이 여행하는 목적이다. 농사. 사실 무전여행이라는 테마 없이 단순히 농업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관객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영화가 되었을 것 같다. 농사를 업으로 삼는 것에 관심 있는 한국 청년들이 별로 없듯이 농사 자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웰빙, 오가닉 푸드 등을 화두로 도시에서 자신만의 작은 뜰을 가진다거나 주말농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농업을 위해 무일푼으로 여행을 떠나는 세 청년이 주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우리는 갑자기 내용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영화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농사는 직업 그 이상이다. 삶이다.’ 그렇기에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더 와 닿는 것이 아닐까. 극영화와 달리 다큐멘터리는 편집, 그리고 경우에 따라 추가되는 내레이션과 배경음악 등을 제외하면 인물의 삶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렇기 때문에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서, 말하자면 진정한, 그리고 사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저 우리의 삶의 이야기인 것이다. 2년간의 여행을 마친 뒤, 그들은 모두 농사를 짓고 있을까? 아니다. 그렇지만 저마다 어떤 일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책을 쓰고 창업을 하고, 누군가는 취직을 하고, 또 누군가는 농사를 짓는다. 여행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의미가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닐까. 이후의 삶이 달라진 게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이라는 점. 처음에는 두렵고 설레던 무전여행이 이제는 우리가 지나온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는 것. 그렇게 여행은 우리에게 삶에서 놓쳐왔던 생기와 의지를 불어넣어주며 다음 도약으로의 기회를 심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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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후 대책 없다한줄 관람평


송희원 | 노후 대책 있다!

박영농 | 불안은 노후를 잠식한다

이지윤 | 우리는 너무 화가 나고! 인정사정 볼 것도 없다!

김은정 | 그들이 소리치는 삶의 대책





 <노후 대책 없다> 리뷰: 불안은 노후를 잠식한다(아주 사적인 감상)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영농 님의 글입니다.



1. 

영화를 볼 때마다 그 영화를 글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강박적으로 고민한다. <노후 대책 없다>를 보면서 생각했다. 이 영화를 과연 영화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나는 포기했다.


2.

영화 속 출연자 모두가 하나같이 자신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나에게 요구하는 것들 다 거부할 거야라든지, 나는 이런 거 하기 싫고,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거야 하는 치기에 얼룩져있다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펑크를 사랑하고 있구나.


3.

물론 펑크 정신은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외부의 것들에 대해 반기를 들면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곤 하지만, 영화 속 출연자들은 단순히 회의주의에 젖어 방탕하게 사는 것만을 최고로 삼지 않는다. 모두 엿 먹으라는 가사를 노래하지만 최소한 나 말고는 다 틀렸어, 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4.

그래서 부럽고 멋있다.


5.

사회를 비판하고 체제와 부조리에 대항하지만 또 그런 음악활동을 하기 위해 성실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감명 깊다. 한편, 그런 문제의식들을 음악의 영역에만 가둬두고 소비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메가폰을 들고 직접 거리로 나서기도 한다. 예술에게 사회적 기능을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단지 흥미와 진지함을 고루 갖춘 이들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것이다.


6.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계의 어려움으로 인해,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들이 없다는 이유로 펑크를 그만둬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며 좌절하고 고민하는 이들의 잔상이 영화가 끝나고도 뇌리에 오랫동안 맴돈다. 사랑하기 때문에 부족해보이고, 그래서 눈물을 흘리며 비참하게 슬퍼할 수도 있는 게 아닐까. 사랑한다는 게 도대체 뭐냐고 묻는다면 할 말 없다. 나도 모른다. 그러나 출연자들의 눈물과 비애는 거짓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7.

노후 대책 없다! 라고 호기롭게 말하지만 끊임없이 노후에 대해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메가폰을 잡고 거리로 나설 수도 있는 것일 테다. 이들은 단지 어리석은 반동분자에 불과한 존재들이 아니다. 누구보다 자신과 타인을 그리고 우리 사회를 사랑하고 있으며 또 진지하게 대하고 있는 것이다. 마이크로 머리를 찍어대는 광기의 공연을 마치고 난 다음 소박하게 맥주를 아껴 마시는 이들의 모습은 공허한 이상주의자라기보다는 지나치게 현실적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결코 틀리지 않았다.


8.

노후 대책 없다. 대신 노후에도 함께 살아가자. 사실상 그게 대책이다.

 

9.

이 리뷰는 대책이 없다.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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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나비효과한줄 관람평


송희원 | 사드 '진심' 가고 평화 '함께' 오라

이현재 | 아무것도 안 하면 불안해서 손을 놓을 수가 없어

이지윤 | 파란나비들의 날갯짓으로

최지원 | 싸우면서 평화에 가까워지는 사람들





 <파란나비효과> 리뷰: 파란나비들의 날갯짓으로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윤 님의 글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사드(THAAD) 배치는 정권이 교체된 지금까지도 논란의 중심에 있다. 사드의 외교적 가치와 군사적 실용성에 대한 의심, 그로 인해 파생되는 환경 파괴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북핵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목 하에 사드 배치를 결정한다. 사드가 배치되는 경북 성주 군민들의 동의 없이 이루어진 일방적 결정이었다. 박문칠 감독의 <파란나비효과>는 현재진행형인 사드 문제를 다룬 첫 번째 다큐멘터리 영화다.





작년 8월부터 올해 4월까지의 촬영분을 토대로 제작된 <파란나비효과>는 팩트 체크가 아닌 성주 군민들의 목소리에 포커스를 두고 있다. 사드라는 현실을 마주한 인물들의 사연과 감정, 생존권의 주장을 바탕으로 그 흐름을 이어나간다. 사드 배치 최적지로 성주가 거론된 후 시작된 반대 투쟁은 아이들에게 피해를 끼칠 레이더의 전자파가 걱정되어 거리로 나온 여성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카메라는 변화를 위해 모인 인물들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담아내며 그 속에 피어나는 연대와 생각의 확장을 스크린까지 고스란히 옮겨온다. 그리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성주 군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군민들의 모습이 자칫 님비(NIMBY) 현상의 단편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은 성주 군민들이 주장하는 것이 ‘성주군 내 사드 배치 반대’를 넘어선 ‘반전(反戰)과 평화’라는 것을 점진적으로 드러낸다. 더 나아가 사드 문제에 대한 생각의 확장은 정치적 시야의 확장으로까지 이어진다. 투쟁에 참여한 군민들은 정치에 적극적이지 못했던 과거 스스로의 태도를 반성한다. 불편한 진실을 목도한 군민들이 ‘빨갱이’, ‘외부세력’이라 타자화되던 사람들과 비극적인 사건들을 되새기는 장면은 울컥한 감정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들은 현재까지 이어져온 불통(不通)의 실타래가 멀고도 가까운 과거에서부터 비롯된 것임을 자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자각한 이들은 실타래를 끊어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평화를 외친다.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 힘겨운 순간들이 닥쳐오기도 한다. 투쟁의 불씨를 끄기 위한 회유와 압박, 제3부지 논란으로부터 비롯된 의견 차 등은 함께 변화를 외치던 군민들을 분열시키고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군민들은 연대의 끈을 놓지 않으며 힘겹고 불합리한 순간들에 맞선다. 함께 울고 웃으며 서로를 위로하고 누군가를 위해 대신 분노하는 연대의 과정은 거대한 국가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진심’이란 힘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어쩌면 그 진심은 성주에서 지속되고 있는 수많은 나비들의 날갯짓을 지치지 않게끔 하는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파란나비효과>는 4월 26일, 소성리에 기습적으로 사드가 배치되는 장면을 통해 막을 내린다. 허무함과 동시에 분노를 자아내는 결말은 자연스럽게 현실과 이어진다. 사드가 배치된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에는 여전히 ‘사드 반대’, ‘사드 철회’란 글씨가 선명하다. 마을회관 앞에서는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작품은 계속해서 반대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성주 군민들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사드의 문제가 성주를 넘어선 모두의 문제임을 이야기한다. 동시에 <파란나비효과>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시작된 파란 나비들의 날갯짓에 대한 연대를 호소한다. 미미한 파란 나비들의 날갯짓으로 평화라는 결과를 향해 나아가고자 그렇게 손을 내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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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델타 보이즈한줄 관람평


송희원 | 현실은 기(승전)결, 우리만 아는 승전

이현재 | 타인의 진지를 비웃지 마라

이지윤 | 허기가 도는 세상, 빛나는 꿈

최지원 | 우리는 대책이 없고 무엇 하나 쉬운 것도 없다

김은정 | 온 몸으로 흔들기






 <델타 보이즈> 리뷰: 우리는 대책이 없고 무엇 하나 쉬운 것도 없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지원 님의 글입니다.



<델타 보이즈>는 시종일관 유머러스한 톤으로 네 남자의 대책 없는 모험담을 이야기한다. 분명 남성 사중창 콘테스트에 도전하는 이야기임에도 ‘도전 해볼까’로 시작해서 ‘제대로 해보자’로 넘어가는 과정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제대로 노래를 연습하는 과정은 영화 후반부에야 등장한다. 심지어 이렇다 할 배경음악도 없다. 사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도전을 해내고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도전을 마음먹는 과정이 얼마나 지지부진한지에 대한 설명인 것이다. 때문에 (공연을 올릴 수 없게 되었지만) 공연 전 마지막 연습 이후의 이야기는 아예 생략되어 있고 영화의 마지막에 관객들의 박수소리만 사운드로 삽입될 뿐이다. 도전의 시작, 노력하는 과정, 결말이라는 순차적 구조를 따라가지 않고 오히려 인물들의 고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이 영화의 특징이다. 네 남자는 생각보다 능력이 없어서, 이미 여러 번 실패해서,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아서, 아내가 반대해서 등의 이유로 영화 곳곳에서 소리를 지르고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짜증이 치미는 현실에 그들은 고함치고 주정부리며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이 인물들의 공통적 ‘대책 없음’은 <델타 보이즈>의 단점이기도 하며 원동력이기도 하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이 인물들이 굳이 도전을 계속하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 다소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아내에게 거짓말을 하고 장사를 뒤로 한 채, 그렇게 하고 싶은 것도 아닌 음악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잘 하고 있던 생선가게와 공장을 그만두고 (잘 하지도 못하는) 사중창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영화는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에 대해 고민하고 자학하는 인물들을 보여주며 흘러간다. 그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즉 영화는 어떤 도전을 할 때, 확신을 가지고 뚜렷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자기 자신을 의심하고 한심해하고 괴로워하는 인물들을 보여주며 새로운 차원의 리얼리티를 획득하게 되고, 따라서 다른 영화들과의 차별성을 가지게 된다. 신화적으로 꾸며진 모험담, 꿈의 도전기와 정반대의 길을 가는 것이다. 예컨대 영화 후반부에 나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어 노래한다는 ‘대용’의 대사가 있는데, 이를 들은 ‘일록’은 더 큰 혼란을 느끼게 된다. 이전까지의 모험담에서는 대용의 희망찬 대사가 그 자체로 희망적인 것으로 읽히겠지만 <델타 보이즈>에서는 대책 없는 해맑음으로 읽힌다. 게다가 일록의 상황을 알고 있는 관객으로서는 공들인 탑이 완성되기 직전에 무너지는 상황에서 들려오는 희망적인 대용의 말이 상황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대책 없음’은 분명 영화의 단점으로 보일 수 있다. 성인 남성 넷이 시도 때도 없이 술에 취해서 고함을 지르고 현실적인 고민은 하나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노래를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장면들이 일으키는 반감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네 인물의 강력한 캐릭터성과 무식한 고군분투는 독특하고 생생한 활기를 띠게 한다. 여타 영화와는 다른 각도에서 주인공들의 지친 모습, 미성숙한 모습을 부각시키면서 희망적 메시지까지 담아내고 있어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을 믿기 어렵다는 평을 받고 있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솔직하고 단순한 이 중창단 도전기는 어쩌면 극영화보다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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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한줄 관람평


송희원 | 먼 이국땅에서 펼쳐지는 여성들의 강인한 삶과 노래

이현재 | 잊혀진 꿈의 악보

박영농 | 고려(빼어날 고, 아름다울 려)의 아리랑

최지원 | 가락으로 전해지는 한의 정서와 감동

김은정 | 역사 한 켠, 여전히 노래하는 고려인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 리뷰: 잊혀진 꿈의 악보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현재 님의 글입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오래된 사진 하나가 투사된다. 오래된 사진을 처음 본 관객은 그 사진이 전달하고 있는 정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정지된 화면 위로 내레이션이 흘러 나와 그 사진에 대한 정보를 추측가능하게 만든다. 내레이션은 한국에서 러시아로, 러시아에서 중앙아시아로 쫒긴 그들의 기구한 기원을 짧게 서술한다. 서술이 마무리되면 카메라는 끝없이 펼쳐진 황량하게 얼어붙은 대지를 걷는다. 다시 내레이션이 흘러나오며 그들의 고통스러운 이주를 전달한다. 그리고 카메라는 고려인들이 묻혀있는 공동묘지에 당도한다. 다시 내레이션은 그들이 처음 연해주에 도착하여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움집을 파고 살았던 시절을 서술한다. 서술이 마무리 될 즈음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기념비 위에 무희로 보이는 여인의 사진이 투사된다. 그리고 그제야 내레이션은 영화가 다루게 될 대상이 고려극장, 이함덕과 방 타마라가 누구인지를 서술한다. 이상이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이하 <고려 아리랑>)의 오프닝이다.





<고려 아리랑>의 오프닝은 정해진 대상을 다루려고 하는 다큐멘터리로서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다. 그것은 이미지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오히려 정보를 전달하는 쪽은 이미지를 돕고 있는 내레이션에 가깝다. 그렇다고 내레이션이 이미지들을 정리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오프닝임에도 불구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내레이션은 선형적인 시간을 따라가지 않는다. 내레이션이 전달하는 정보의 시간대는 고려인의 기원이 된 러시아의 황망한 땅에서 고려인이 겪었던 이주의 시간으로, 그리고 다시 러시아의 황망한 땅으로 돌아간다. 회귀한 곳에서 내레이션의 서사는 다시 고려인들의 본격적인 삶의 터전이 된 중앙아시아로 비약한다. 정리되지 않은 내레이션은 이미지들을 한 곳에 묶지 않고, 묶이지 못한 이미지들은 벌어진 사태나 인물의 초상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하나의 시퀀스가 열리고 닫힐 때마다 영화는 고려극장의 공연 장면이나 이함덕과 방 타마라의 노랫소리 혹은 풍경과 자료가 오버랩 되는 이미지를 제시한다.



앞서 말했듯 열리고 닫힐 때 제시되는 사운드나 이미지가 시퀀스에 제시된 형상을 정리하거나 정보들을 좌표에 지정시키는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이미지들은 고려인들에 대한 김소영 감독의 시선이나 고려인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억들을 접고 펼치는 기능을 한다. 이 기능이 형성하는 것은 고려인에 대한 정보라기보다는 떠돌고 이산되어야 했던, 그들이 걸어온 궤적의 리듬이다. 이 리듬은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정보들을 정돈하고, 나아가 고려인의 삶을 반추할 수 있는 일종의 거울이 된다. 영화는 정보를 좌표로 지정하지 않는 대신 유동적으로 조응시켜 그들이 왜 한국이 아닌 연해주를 그리워했는지, 어딘가에 정착한다는 것이 그들에게 무엇인지, 그들의 노래가 그들 자신에게 어떻게 들리는지를 복원한다. 이 리듬으로 인해 영화는 고려인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정보적 아카이브라기보다는 고려극단의 노래를 기준으로 정보를 정리한 일종의 악보와도 같다.





여기에는 해소되지 않는 한 가지 의문점이 있다.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사명이라면, 흘러나오는 영화는 과연 지금 시점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는가? 혹은 제시되고 있는 ‘악보’는 적절한 재현인가? 이는 결국 복원의 기준은 왜 리듬이어야 했는지 묻는 것에 다름 아니다. 영화는 이 질문에 대하여 직접적인 대답을 하고 있진 않다. 그러나 영화의 몇몇 장면에서 이 영화가 악보였어야만 하는 이유를 언뜻 찾을 수는 있다. 영화의 초반, 방 타마라가 (우리가 보았던) 고려극장의 공연영상을 보고 난 뒤 “나는 이 영상을 처음 봐요. 제 젊은 시절을 되돌려주어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 순간 우리는 과거의 자신을 보고 있는 영상의 주인공을 본다. 그것은 관객의 입장에서 (시간이 중첩되는 순간을 관람을 통해 경험한다는 의미에서) 다분히 체험적인 순간이지만, 방 타마라 본인에겐 잃어버린 시간을 돌려받는 회귀의 시간이다.


이러한 회귀는 영화의 오프닝과 클로징에 나오는 이함덕의 모습이 투사되는 장면에서 더욱 명확하게 형상화된다. 보는 이는 없지만, 투사되는 영상은 그 곳에 한 때 희망을 품고 왔던 이들을 위한 일종의 제의이다. 이 제의는 잃어버린 역사를 마주한 이가 그것에 시선을 던지는 가장 적합한 태도이다. <고려 아리랑>은 자신만의 집을 짓고 그곳에 머물며 먼 곳의 소식을 전하는 헤르메스가 되고 있다. 중간 중간 제시되는 오버랩 된 영상과 자료들은 장소들을 움직이고 교통하게 만들고 중첩시키는 수행자로서 작동한다. 고려인이라는 망명자를 찾아 떠난 카메라는 그저 또 다른 장소를 찾아 영원히 떠돌 뿐이다. 이 떠돎의 상태는 고려인들이 처한, 그리고 처했던 ‘현실’과의 결연이며 이 현실은 본 다큐멘터리의 출발점이자 최종적인 지향점이다. 결국 자료를 정리하지 않고 리듬만을 남겨놓아 자료를 ‘떠돌 수 있게’ 만든 것은 본 다큐멘터리가 수행하는 수사의 기반이자 윤리의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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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의 제인한줄 관람평


송희원 | 비관과 희망의 뉴월드

이현재 | 구교환의 '제인'은 올해의 캐릭터

박영농 | 제인입니다

이지윤 | 우리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아요. 여기, 뉴월드에서.

최지원 | 시시하고 불행한, 거짓말과 꿈이 덧칠되는 삶

김은정 | 불행과 함께 살기






 <꿈의 제인> 리뷰: 불행과 함께 살기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은정 님의 글입니다.



소현은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싶다. 그런데 그 방법은 배워본 적도 없고 아무도 알려줄 생각을 않는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항상 함께 모여 있다. 즐거워 보인다. 소현만 빼고. 아주 처음, 그 시작에 놓여있었을 때, 모든 것은 신비롭고 자극이 가득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모든 것에 익숙해졌다. 불행과 행복도 마찬가지이다. 불행이라는 자극에는 쉽사리 익숙해 질 수가 없다. 그것은 비슷해 보일지라도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비틀어 예상치 못한 곳을 아프게 만들기 때문이다. 반면 행복이라는 것은 일견 다르게 보일지라도 우리는 비슷한 감정에 환호하게 된다. 불행에 더 예민한 방식으로 설계되고 만 것이다. 그렇기에 비슷한 정도의 행복과 불행이라는 자극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행복에 익숙해져버려 더 이상 이것이 가져다주는 자극과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불행에는 여전히 익숙해지지 못해 또 다시 절망하기를 반복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설령 비슷한 정도의 불행과 행복이 우리에게 닥친다하더라도 다르게 반응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게다가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신의 불행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고, 이를 극적이고 고통스러운 것으로 비약하여 연민을 얻고자하는 오묘한 심리를 깊은 곳에 내재하고 있으므로 이는 일견 불가피해보이는 인간의 특성인 것이다.  





소현은 굉장히 소모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 말인 즉 주변의 인물들을 마치 소모품처럼 소진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의 의도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변의 인물들이 자신을 떠나가게 만든다. 소현을 유일하게 받아주었던 정호도 말없이 떠나고, 소현에게 다가왔던 지수도 떠나고 만다. 심지어 꿈의 제인마저도. 그러나 소현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제3자로서 소현에게 공감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극 속 인물의 입장으로서 그에게 공감할 수는 없었다. 그의 행동은 경멸스러웠고 언뜻 순진해보이지만 사람들 틈에 섞여들기 위해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범죄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끊임없이 사람 속에 섞이고 싶다는 말만을 반복할 뿐 자신의 행동에 대해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눈물을 보이는 것도 자신이 또 다시 실패하고 모든 것을 망쳐놓고 말았다는 실망감에서 온 것처럼 느껴졌다. 소현이 그렇게 가까워지고 싶었던 사람들과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그가 외톨이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사실과 그가 도덕적으로 부적절하다고 느껴질 수준의 반응을 보이는 것은 실은 어느 것이 시작이라고 말할 수 없는 헤어날 수 없는 딜레마와 같은 것이다.





소현은 꿈을 꾼다. 끔찍한 현실을 회피하기 위함인지 현실의 사건들을 조금씩 비틀어버린다. 그 곳에서 제인은 새로운 ‘가출팸’의 엄마로, 지수, 쫑구, 대포는 그의 식구들로, 바에서 일하는 주희는 쉼터의 자원봉사자로 그려진다. 그곳에서는 가족으로 인정받기 위해 억지로 일하지 않아도 된다. 다른 사람들처럼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이것이 소현이 받아들일 수 있고 소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소현은 정호와 헤어진 모텔로 찾아가 자살시도를 한다. 소현은 말한다. 누군가가 나를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그 때 제인이 그 방으로 들어온다. 그런 존재가 제인이다. 현실에서도 제인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쩌면 소현만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의 슬픈 눈빛을 마주쳤을 때, 소현에게 말했다. 너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야.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그렇게 행복하기만 한 일은 아니다. 학생은 돈을 벌지 않아도 된다. 부모의 그늘 아래서 고민 같지도 않은 것들을 고민하며 산다. 학생일 때가 가장 행복하다. 하지만 학생이라는 존재에게 부모가 없다면, 그 그늘이 없다면 그들은 어떻게 추락할까? 우리는 모든 것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고 만다. 어떤 단어에 따라오는 보편적인 이미지. 그것이 마치 세계의 모든 것들을 대표하는 듯한 거대한 착각. 그러나 가끔씩 우리에게 이렇게 일러주는 메시지가 없다면 그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깨달을 방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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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입니다한줄 관람평


송희원 | 사람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시민들의 이야기

이현재 | 노무현을 볼 때마다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가끔, 딱 그리운 만큼 그가 무서워질 때가 있는 것이다.

박영농 | 꿈의 무현

이지윤 | 그저, 노무현입니다

최지원 | 한 사람을 기억하는 예의

김은정 |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 실로 놀랍다.







 <노무현입니다> 리뷰: 안녕하세요, 제가 노무현입니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희원 님의 글입니다.



‘그리움’이란 상실한 대상에게 여전히 사로잡혀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수많은 저작물과 연달아 흥행하는 영화를 보면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실감한다. 이창재 감독의 <노무현입니다>는 개봉 열흘 만에 누적 관객 100만을 돌파할 만큼 많은 관객의 선택을 받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다룬 영화는 이미 몇 편 나왔다. 그가 변호를 맡은 1980년대 부림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변호인>(2013)과 2000년 부산과 2016년 여수에서 각각 출마해 낙선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고 백무현 후보의 이야기를 교차해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무현, 두 도시 이야기>(2016)가 대표적이다. 이 두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노무현입니다>에서 또다시 마주하게 되는 것은 사람 사는 세상을 꿈꿨던 노무현의 인간적인 모습이다.





영화는 2002년 2월에서 5월까지의 민주당 경선의 여정을 되짚는다. 노무현은 2000년 총선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았던 종로구 공천을 거절하고 지역주의 타파, 동서화합을 이루겠다며 부산 북·강서을로 내려가 낙선한다. 대의를 위해 당선 가능성이 낮은 지역구에 출마해 낙선한 그를 사람들은 ‘바보 노무현’이라 부르며 응원했고 결국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결성하기에 이른다. 노무현은 그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응원에 힘입어 2002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다. 쟁쟁한 후보들 곁에서 지지율 2%로 꼴찌였던 노무현은 민주당 국민참여경선제 방식을 통해 대선주자가 된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인상 깊은 연설과 자발적으로 그를 지지하고 돕는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화는 노무현의 명연설 장면들과 그를 회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여주며 경선 당시의 역전극을 박진감 넘치게 그려낸다. 





<노무현입니다>는 크게 ‘노무현은’, ‘노무현과’, ‘노무현의’, ‘노무현을’이라는 제목이 붙은 4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장마다 영화를 상당수 채우는 것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일대일 인터뷰다. 인터뷰이는 총 39명으로 이화춘 전 정보국 요원과 노수현 전 운전기사, 유시민 작가, 안희정 충남도지사, 문재인 대통령, 노사모 회원들이 등장한다. 가까이서든 먼발치에서든 그를 지켜봤던 사람들은 사적인 일화들을 들려주며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모습을 증언한다. 인권변호사 시절 자신을 감시한 정보국 요원과도 친구가 된 일화와 운전기사의 결혼식 날 차를 대신 운전해준 일화 등은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한다. 영화는 이러한 다양한 증언들을 들려주며 ‘노무현은’, ‘노무현과’ 같은 미완의 문장을 관객 각자 스스로가 완성해 갈 수 있게끔 유도한다. 장의 제목은 관객에게 일종의 열린 형식의 질문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영화는 단순히 추억을 환기하고 그리움에 사로잡힌 상황만을 전개하지 않는다. 노무현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고 행동하는 모습도 배치한다. 감독은 그들의 성숙한 참여의식을 보여주며 민주주의 가치를 강조한다. 그리고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노무현’이라고 말한다. 보수 언론의 색깔론, 지역주의 프레임을 정면 돌파하며 쟁쟁한 후보들 사이에서 “도와주십시오”를 단호하고 힘 있게 외쳤던 노무현. 계파도, 당내지지 기반 세력도 없는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해 대선 후보로 만들어낸 시민들 모두 ‘노무현’이다. <노무현입니다>은 노무현과 시민들 모두가 주인공이다. 그를 복기하는 수많은 영상물과 자료들, 그리고 무엇보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 왜 사람들은 그를 그리워하며 쉬이 보내주지 못할까. 그 이유를 유시민 작가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대신하고자 한다. "떠나보내려고 해서 떠나보내지는 게 아니다. 떠나보낼 때가 되면 저절로 떠나가는 거다. 노무현에 대한 애도가 마감되는 건 사회가 바로 잡혀질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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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 투게더한줄 관람평

송희원 | 흩어져 악몽을 꾸던 이들, 함께 모여 꿈을 꾸다

이현재 | 간혹 서늘한, 갑자기 함께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차가운 위로

박영농 | 힘들다

이지윤 | ‘헬조선’에서 해피엔딩을 꿈꾸다

최지원 | 폭력이 파도치는 삶 속에서 발견하는 작은 위안

김은정 | "조금, 조금만 더" 어쩌면 거짓말일지 모를



 <컴, 투게더> 리뷰: [주의] 외면하지 말 것!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영농 님의 글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왕이면 ‘너’답게 살아봐!

두 번째 입시에도 실패한 ‘한나’는 자기 방식대로 삶을 꾸려가는 ‘유경’을 동경하며 ‘너처럼 살고 싶다’고 말한다. 자신의 삶도 결코 녹록치 않음을 밝히며 유경은 한나에게 덧붙인다. “이왕이면 너답게 살아봐”. 한나는 감동한다.


아프리카가 날 기다린다!

한나는 집을 나서는 유경에게 두렵지 않느냐고 묻는다. 사실 조금은 걱정이 되지만 아프리카가 자신을 기다린다며 택시에 짐을 싣는 유경. 먼 길을 떠나는 자신을 곁에서 배웅하는 한나를 바라보다 유경은 입을 맞춘다. 한나는 결심한다.



<컴, 투게더>는 한 가정 속 세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직장에서 해고당한 ‘범구’는 좌절감에 시달리던 중 같은 아파트 주민인 ‘호준’과 우연히 술자리를 함께하게 된다. 범구는 곧 호준이 자신과 비슷한 처지임을 깨닫고 우정을 나누지만 미묘한 여운을 남기던 호준은 이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범구는 비애를 느끼며 안마방에서 난동을 부리다 경찰서 신세를 진다. ‘미영’은 카드 회사에서 일한다. 줄곧 실적이 높아 사내 평판이 좋았지만 경쟁자 ‘은정’의 약진에 영업 실적 2위로 전락하고 만다. 그 내막에 은정과 영업소장의 내연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미영은 퇴근 후 그들이 탄 차량을 뒤쫓는다. 미행을 따돌리려다 은정과 소장은 교통사고를 당하고 미영은 죄책감에 시달린다. 마침내 미영은 다시 영업 실적 1위로 올라서게 되지만 그는 사직을 결심한다. 재수생 한나는 이번에도 명문대 입시에 아깝게 실패한다. 예비 번호를 받고 추가 합격을 기다리지만 입학을 포기하는 사람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한나는 합격자인 양 거짓말을 하고 다른 합격자 ‘아영’과의 만남을 갖는다. 그날 밤 술자리에서 한나와 아영은 남자들과 합석하게 되고 만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영은 나쁜 꿍꿍이가 있던 남자에게 붙잡혀 갈 위기에 처한다. 외면하려던 한나는 다시 찾아가 아영을 구하지만 끝내 바래다주지는 않는다.



각자가 처한 감당하기 힘든 현실 탓에 끝임 없이 삐걱대던 이 가정은 한바탕 사건을 겪고 나서야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범구는 미영에게 그동안 고생했으니 이제는 좀 쉬라며 다독이고 미영은 그런 범구에게 이번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라고 조언한다. 결국 추가 합격이 된 한나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겠노라 선언한다. 명문대 진학을 다그치던 범구와 미영은 그런 한나의 결심을 응원하기에 이른다. 정리해고와 실적경쟁, 입시경쟁의 현실에서 그들이 취하는 입장은 유경의 조언처럼 ‘나답게 살기’로 일단락 지어지는 듯하다. 극을 이끌어가는 세 인물의 갈등은 부조리한 현실에서 비롯된다. 그러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개인들은 문제의식을 분명히 느끼고 있지만 부조리한 현실구조 그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비교 가능한 다른 개인에 초점을 맞춘다. 구조가 아닌 타인을 향한 시선은 현실에 대한 주체적 개입을 불가능하게 한다. 영화는 부조리한 현실은 그대로 내버려둔 채 내재된 갈등을 사적 복수의 차원에서만 다룬다. 또한 영화 속 인물들은 ‘나답기 살기’의 전략으로 당면한 사회를 외면 혹은 도피하기에 이른다. 이들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된다 한들 이전의 부조리를 다시 마주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그때도 그들은 ‘나답게 살기’의 전략으로 일관할 수 있을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영화 <졸업>(마이크 니콜스, 1967)의 마지막과 대비된다. 범구, 미영, 한나는 가족의 정을 다지며 오랜만에 나선 나들이에서 소나기를 피하려다 진흙탕에 구른다. 그마저도 즐겁게 웃어넘기고, 한데 엉켜 누워버린 이들을 카메라는 버드 아이 뷰로 비춘다. 청년 혹은 미래세대를 대표하는 한나의 미소를 클로즈업하는 마지막 장면을 두고 감독은 인터뷰에서 ‘미래세대에 대한 희망을 담아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정작 한나와 같은 세대인 나는 그 장면이 전혀 희망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영화 <졸업>의 그것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같은 세대인 유경은 영화의 후반부에 아프리카로 떠난다. 그런 그를 동경하며 결심을 굳히는 한나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나름 세운 계획이 있다며 독립을 선언한다. 한나의 앞날이 아직은 생기 넘치는 세렝게티처럼 설정되어있지만 결코 그렇지만은 않을 것임을 현실의 한나들은 이미 감지하고 있다. 입시경쟁의 과거와는 전혀 상관없는 미래로 향하는 듯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현실의 부조리는 그를 실적경쟁(미영)과 정리해고(범구)라는 다음단계로 안내할 뿐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유경의 말을 다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너답게 살아봐!”는 “딴 데 가서 알아봐!”의 다른 표현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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