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춤추는 거라고 생각해요" <여자들>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7년 8 4일(금) 오후 7 30분 상영 후

참석 이상덕 감독, 유이든 배우

진행 '와이낫' 전상규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은정 님의 글입니다.



“왜?” 지독한 물음이다. 시간이 지나도 답을 낼 수 없고 결국 포기하고 싶게 만드는. ‘시형’은 물음을 던진다. 왜? 그는 답을 얻고 싶은 것일까. 그는 5명의 여자들을 만난다. 너무 천진하고 또 너무 깊은 물음에 그녀들은 제각기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속에서 시형도 잘은 모르지만 자신이 기다리던 무엇인가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고, 아니 오히려 그것을 향해 다가가고 있음을 느낀다. 영화 <여자들>의 이상덕 감독, 유이든 배우, 그리고 ‘와이낫’ 보컬 전상규와 함께 인디토크를 진행했다. 





전상규(이하 진행): 안녕하세요. 오늘 진행을 맡은 와이낫 전상규라고 합니다. 어떻게 이 영화를 기획하게 됐나요?



이상덕 감독(이하 이): 시나리오를 다 쓰고 찍은 게 아니라 한 달에 하나씩 찍어나간 영화에요. ‘달마다 꾸준히 영화를 찍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각 배우 분들의 촬영기간이 그다지 길지 않았어요. 오키나와는 조금 길었고요. 대부분은 1-2회차로 마무리했어요. 이 영화는 찍는 방법보다 기록되는 방식에서 특징이 생겼어요. 술이나 담배 같은 것들은 배우 분들의 취향을 반영했고, 대사는 틀리지 말았으면 하는 부분 빼고는 자유롭게 연기를 요청했어요. ‘이든’의 챕터 같은 경우에는 선배와 이야기하는 부분을 되게 재미있게 찍었어요.



진행: 네, 저도 유이든 배우 부분을 굉장히 재미있게 봤어요. 촬영이 하루 만에 이루어진 것인가요?



유이든 배우(이하 유): 네, 그 챕터 마지막 부분만 새벽에 찍고 나머지는 중국집에서 쭉 찍었어요.



진행: 유이든 배우의 평소 성격과 스크린 속의 이든은 같은가요?



유: 조금 달라요. 저런 모습도 있기는 한데, 스크린 속 모습은 굉장히 과한 것 같아요. 



진행: <여자들>에서 같이 작업한 배우 분들 중 처음 만난 분이 있나요?



이: 사실상 작업은 전부 처음이었어요. 요조 배우는 같이 뮤직비디오 작업을 한 적이 있어서 연이 닿았어요. 그리고 영화에서처럼 서점을 실제로 운영하고 있어요. 이든 배우는 만나보기 전에는 프롤로그 배우로 생각을 했었어요. 그 당시 다른 작품에서 대부분 예민한 캐릭터였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너무 귀엽고 통통 튀더라고요. 그래서 ‘아름다움의 취향’ 챕터를 함께 하게 되었어요. 서진 배우는 최시형 감독(배우)과 같이 단편을 촬영해서 만나게 되었는데 마음에 들어서 제안을 했어요. 영화에 등장하는 그 학교가 실제로 서진 배우의 모교에요. 앞뒤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미팅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물론 다른 챕터들도 중요하지만 그 두 가지가 특히 중요했기 때문이에요.



진행: 극중 오키나와에서 촬영한 챕터가 하나 있어요. 오키나와에 가지 못한 배우 분들로부터 별다른 언급은 없었나요?



이: 엄청 혼났어요.(웃음) 원래는 오키나와에 갈 생각이 아니었어요. 시형이 마지막에 친동생을 만나러 가는 것을 생각했어요. 제 친동생이 도쿄에 살아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어렵게 된 거죠. 그래도 어딘가를 가고 싶어서 오키나와에 가기로 했어요. 프롤로그에 고양이가 등장하잖아요. 영화에서 간 섬이 고양이 섬이에요. 고양이라는 사이클을 위해 이렇게 선택하게 된 것 같아요. 하나 더 말씀 드리자면 ‘아름다움의 취향’ 챕터에 등장하는 중국집도 정말 심혈을 기울여서 골랐어요. 많은 중국집을 돌아다니다 그 가게의 홍등이 너무 예뻐서 선택하게 되었어요. 여러 음식점 중 특별히 ‘중국집’에 가게 된 경위도 있어요. 시형의 친한 사촌매형 역을 맡은 종필 배우가 중국음식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렇게 하게 되었어요.(웃음) 그리고 원래 눈이 오는 이야기는 없었는데 눈이 와서 이든과 시형이 걷는 새벽 장면을 넣었어요. 날씨나 계절의 변화를 표현하는 것이 저희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했거든요. 정말 운이 좋았죠.





관객: 제목이 원래부터 ‘여자들’이었나요?



이: 저희 영화에 제목이라고 불릴만한 것들이 많이 있었어요. 마지막에 시형이 ‘글을 쓰거나 춤을 추거나’라고 쓰잖아요 저는 그게 너무 마음에 들어서 제목을 그걸로 하고 싶었는데 영화 제목으로는 조금 별로인 것 같았어요. 이 영화는 제가 말씀 드렸다시피 사이클이 있잖아요. 그래서 별자리 이름 짓는다는 생각으로 짓다 보니 ‘여자들’이라는 제목이 나오게 된 것 같아요. 후쿠오카아시아영화제에 갔을 때는 어떤 분이 책 제목 같다는 이야기도 했어요. 



관객: 배우 분들 연기가 자연스러워서 좋았어요. 그런데 포스터에는 왜 여주인공이 네 명밖에 없나요?



이: 아무래도 출연 배우가 많다 보니까 스케줄 조정이 어려워서 다같이 모이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렇다고 영화 개봉을 계속 미룰 수도 없어서 서진 배우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렇게 포스터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관객: 연기에서 애드리브의 비율이 얼마나 되나요?



이: 사실 대부분 대본에 있는 내용들이에요. 시형의 사촌매형인 종필 배우가 유일하게 애드리브를 많이 했어요. 다 짧게 치고 빠져야 하는 신들이다 보니 대본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았어요.



진행: 이든 배우가 연기하면서 참고한 인물이 있었나요?



유: 사실 저는 그런 자리를 가질 일이 거의 없어서 참고할 만한 인물이 없었어요. 감독님과 제가 이야기하면서 만들어냈던 것 같아요. 종필 배우님이 워낙 분위기를 잘 만들어줘서 흘러가는 대로 빠져들었던 것 같아요.



진행: 이 영화는 가능성을 많이 열어놓은 상태에서 시작이 돼요. 배우와 감독이 함께 키운 느낌이 많이 들 것 같아요.



이: 그렇죠. '나에게 영화가 무엇인가' 고민하면서 만들었어요. 단점이 많은데 그것을 끌고 가는 힘이 하나는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관객: 단점이 많다고 말씀하셨는데 영화의 단점은 무엇인가요?



이: 기승전결이요. 시형의 감정에 기승전결이 부족한 것 같아요. 그래서 시형 캐릭터가 일관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이 영화는 한 달에 하루씩을 뽑아서 찍는 것이잖아요. 그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다른 29-30일 동안 생활하는 모습은 나오지 않으니까요.





관객: 여성 입장에서 보았을 때 남성 감독이 쓴 시나리오가 와 닿았나요?



유: 이런 모습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생각을 해요. 크게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관객: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가 많지 않아요. 그런데 이 영화는 자연스러워요. 남주인공은 실제 성격과 얼마나 다른가요?



이: 남주인공 ‘이시형’의 이름은 그 역을 맡은 배우 ‘최시형’과 제 이름 ‘이상덕’을 합쳐서 만든 거에요. 실제 성격과 닮은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저희 영화의 경우 캐릭터의 감정이 차츰차츰 쌓이는 것이 아니다 보니 완전히 같다고 하기는 어렵고요, 취향 정도만 비슷한 것 같아요. 



관객: 어떻게 본명을 극중 이름으로 사용하게 되었나요? 



이: 더 자연스러웠으면 했어요. 제약이 없으면 좋을 것 같아서 그렇게 했습니다. 이름 짓는 것도 힘들어요.(웃음) 그래서 사실 극중에서 이름 부르는 걸 최대한 안 하려고 했어요. 



진행: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과 인사 부탁 드립니다.



유: 최시형 감독과 장편영화를 하나 찍었어요. 이 영화로 인연을 만들어서 함께하게 된 작품인데 올해 하반기 아니면 내년 초쯤 나올 것 같아요. 가제는 ‘안녕 내 사랑’인데 재미있을 거에요. 많이 사랑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이: 저는 다음 영화 시나리오를 썼어요. 다음 영화를 어떻게 찍을까가 가장 큰 고민이고 좋은 영화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영화에서 ‘근사한 우연이였다’라는 카피를 되게 좋아해요. 와주신 분들이 오늘 영화를 보시고 ‘근사한 우연이였다’고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감사합니다.






왜? 라는 것. 그것은 끝내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일지 모른다. 하지만 물음에 고통 받고, 깊숙한 곳으로 내려앉는 대신 그것과 함께 갈 수 있음을 안다면. 사실 어렵지 않다. 그저 춤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잘 출 필요 없고 그냥 원하는 대로 살랑살랑 흔드는 것이라면. 때로는 분노하고 소리지르고 어린아이처럼 땅바닥에 떼굴떼굴 구르는 것이라면.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시형은 5명의 여자들을 지나치며 이렇게 하는 법을 배웠다. 그가 해왔던 것처럼 그저 ‘글을 쓰거나’ 때로는 ‘춤을 추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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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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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칭의 세계 <불온한 당신>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7년 7 23일(일) 오후 2 30분 상영 후

참석 이영 감독

진행 은하선 섹스칼럼니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희원 님의 글입니다.




<불온한 당신>의 시작과 끝의 에피소드를 장식하는 ‘이묵’. 그는 생물학적으론 여성이다. 하지만 남자 같은 차림새로 여자를 사랑한 이유로 ‘바지씨’라 불렸다. 바지씨는 레즈비언이나 트랜스젠더라는 단어가 국내에 존재하지 않던 6-70년대에 사용된 은어다. 영화는 70대 노인 이묵과 동일본 대지진으로 커밍아웃한 일본인 레즈비언 커플 ‘논’과 ‘텐’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의 존엄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 한편으로 상당한 분량을 2014년 당시 혐오 프레임으로 성소수자를 공격하는 세력의 노골적 행동과 언사를 담는 데 할애한다. 그래서일까. 이날 인디토크에서는 질문을 시작하기도 전, 목이 멘 이들이 많았다. 관객들은 감독에게 이 영화를 만들어 줘서 고맙다고 연신 말했다. 이영 감독은 차별받고 소외되는 성소수자들에게 용기와 위안을 전달하고자 이 영화를 만들었다며 관객들의 질문에 차례로 대답했다.





은하선 섹스칼럼니스트(이하 진행): 저는 이 영화를 두 번 봤어요. 첫 번째 봤을 때는 탄핵 전이어서 더 참혹하고 우울한 기분이었습니다. 처음 이묵 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었는데 동성애를 반대하는 이들의 집회 장면이 나오면서 되게 우울해졌어요. 그들의 북소리로 영화가 끝날 때, 알 수 없는 미래, 이 나라는 어디로 갈 것인가, 그런 생각들을 했습니다. 기독교 신자들의 알 수 없는 행동들이 마치 양념처럼 이 영화를 즐겁게 만들어주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묵 님은 개인적인, 드러내기 힘든 마음속의 이야기들을 굉장히 자연스럽게 털어놓습니다. 그걸 보면서 이영 감독님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독님의 전작 <이반 검열>(2005)과 <아웃 - 이반 검열 두 번째 이야기>(2007)를 볼 때도 느꼈지만, 인터뷰이와 라포(rapport) 형성이라 해야 할까요? 어떻게 저렇게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을까 궁금했어요.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요?



이영 감독(이하 감독): 이묵 선배님은 <불온한 당신> 개봉 준비하던 4월에 돌아가셨어요. 관객 여러분도 만나 뵙고 싶었을 것 같고, 저 역시도 개봉관에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정말 가슴이 아프고 많이 슬퍼요. 선배님께서 남긴 말이 있어요. 당신의 뜻을 많은 관객에게 전했으면 좋겠다, 자신의 말이 다른 사람에게 위안과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기 때문에 많이 나누려고 힘내고 있어요. 관계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영화에서 보셨듯이 제가 리어카도 끌고 밥도 해요.(웃음) 논과 텐은 밥을 함께 먹고 친해지는 게 시작이었어요. 이묵 선배님 처음 뵀을 시기가 전작을 막 끝냈을 때예요. 전작이 10대 청소년들의 이야기에요. 그 친구들이 저한테 “30대도 레즈비언 해요?”라고 물었고 저 역시도 선배 세대들이 궁금했어요. 그래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찾아다녔어요. 옛날 신문 펼쳐놓고 그 안에 저와 닮은 분들이나 운동선수, 택시 운전사, 또는 여성 두 분이 굉장히 오랫동안 산 경우 등을 찾았어요. 무작정 찾아가 지역 노인 분들에게 “저와 비슷한 분들이 계셔요?” 묻고 다녔어요. 그리고 문을 두드리며 “제가 바지씨 후배입니다”라고 소개했어요. 그중에 한 분이 이묵 선배님이었어요. 선배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싶다 하니까 성소수자 후배들의 삶이 당당해질 수 있다면 기꺼이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했어요. 제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밥을 하고 음식을 나눠 먹고 같이 일상을 보내는 것이에요. 친해져서 그 사람의 표정을 녹여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 촬영을 시작해요. 그런 부분이 영화에 자연스럽게 묻어났다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진행: 영화에서 이묵 님이 살림을 꾸렸던 사람만 14명이고, 만났던 사람들은 셀 수 없다고 한 부분에서 이묵 선생님의 '여자 꼬시기 노하우'를 영화에 담아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웃음)



감독: 말미에 ‘꼬시는 건 너네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하죠.(웃음) 저한테 직접적으로 지침을 주진 않았어요. 선배님은 인간적인 매력이 있어요. 젊은 시절에는 더 매력이 넘쳤을 거예요.





진행: 일본의 커플이 나와요. 처음 봤을 땐 흐름상 약간 생경하다는 느낌이었는데 두 번째로 보니 이야기들의 연결 지점을 알겠더라고요. 논과 텐의 이야기를 넣은 이유나 계기가 있나요?



감독: 한국도 경주에서 지진이 있었죠. 사실상 지진이라는 재난이 우리나라에도 가까이 와있는 위험이라 생각해요. 영화를 처음 기획한 게 2012년이었어요. 완성까지 3년이 걸렸어요. 첫 기획을 할 당시, 한국은 보수 정권이 집권하면서 많은 사람을 종북으로 몰고 성소수자를 ‘종북 게이’라고 불렀어요. 적대와 증오, 공포를 이용한 정치적 상황들이 당사자로서 굉장히 염려스러웠고 사회적 약자, 소수자 공격이 심각해져서 마치 재난의 상황으로 여겨졌어요. 그리고 LGBT 안에서 청소년을 이제 막 벗어나 성인이 된 한 친구가 따돌림과 외로움으로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어요. 그때가 동일본 대지진 얼마 후였던지라 ‘도대체 재난 상황에서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이듬해 일본 성소수자들에게 직접 얘기를 듣게 되었는데 상상과 별반 다르지 않았어요. 실제 재난 상황에서 많은 성소수자들이 대피소로 가지 않고 참혹한 폐허의 현장에 그냥 남기를 선택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대피소 안은 가족 중심적, 남성 중심적인 질서로 운영되기 때문이에요. 그런 이야기들에 가슴 아프게 공감했고 논과 텐을 만나 그 집에 한 달 동안 살면서 이야기를 담았어요. 논과 텐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커밍아웃하면서 차별적인 시선을 감내해야 했죠. 그들은 딜레마적인 상황, 죽음을 넘나드는 상황에서 인간적인 선택을 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선택이요. 굉장히 존엄한 결정이고 또 성소수자들의 특수한 현실을 보여주는 이야기라 생각해요.



진행: 이해를 받기 위해 커밍아웃한 게 아니라 관계를 알리기 위해서 커밍아웃한 것이라는 논과 텐의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영화에 퀴어 축제를 반대하며 북을 치는 사람들이 나와요. 올해는 저 정도는 아니었어요. 참여자 수는 거의 10배 늘었다고 하더라고요. 이전에 비해 참여자는 늘고 혐오 세력은 줄었어요. 조금만 늦게 촬영했어도 저런 스펙터클한 장면을 못 담았겠구나 싶었어요. 



감독: 정권이 바뀌며 많은 변화가 생겼어요. 상대적으로 보수 정권의 혐오와 증오를 배양하는 환경들은 전보다 훨씬 나아졌어요. 분명히 변화가 있죠. 그럼에도 차별금지법이 100대 국정과제에서 사실상 빠졌어요. 사회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요. 혐오를 선동하는 사람들이 공공장소에서는 없어졌을지라도 여전히 혐오의 정치 프레임은 현재진행형이고 좀 더 복잡해진, 은폐된 형식으로 드러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관객: 혐오 세력 집회는 영화를 통해 처음 본 것 같아요. 그동안 무시하고 지나갔어요. 그 장면들을 보는 내내 맘이 편치 않았어요. 괴로움을 느꼈지만 한편으로 다른 동지들 모습,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 이묵 선배님 모습 보면서 힘을 많이 받았어요. 혐오 세력의 적나라한 장면을 많이 넣은 이유가 있나요?



감독: 영화가 존재를 지우려고 하는 사람들, 존재를 지키려는 사람들 이야기가 엮이면서 진행되고 있죠. 저는 존재를 지우려는 사람들, 혐오 선동 세력의 주장이 삶을 반대하는 논리라 생각해요. 존재와 삶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존엄한 힘에 대해 이야기해야한다 느꼈고요. 혐오는 최근 몇 년의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에요. 점점 더 확산되고 있고요. 많은 사람들이 불안한 삶의 지반 위에 놓이고, 또 밀려나게 돼요. 적대와 공포를 이용하는 증오 정치의 프레임에 대해 꼭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묵 선배님, 저, 논과 텐, 혐오 선동 프레임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게 어떤 폭력인지 관객이 느꼈으면 좋겠어요. 공공연한 장소에서 노골적인 혐오의 폭력이 물리적으로 드러나는 이 현상 자체를 이야기로 만들어서 다신 반복되지 않게 하는 게 영화의 중요한 부분이에요.





관객: 슬픔, 기쁨, 분노 등 여러 감정들을 느꼈어요. 그리고 ‘나는 나이가 들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혹시 준비 중인 작품이 있는지요.



감독: <이반 검열>을 보면 학교에서 학생을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검열해요. 그 친구들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고 퇴학이나 전학을 시켜요. 영화는 이러한 인권침해 이야기와 성장담이에요. 이 주인공들이 30대가 되었어요. 지금의 그들 이야기를 담으려고 해요. 그리고 2009년부터 찾아다닌 바지씨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빨리 관객들에게 선보이려 해요. 



관객: 감독님 전작들을 다 봤어요.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다루시더라고요. 판타지스러운 우리들 이야기도 담아주시면 어떨까 싶어요. 행복하게 함께 오래 살고 있는 커플 이야기라든지 다 같이 모여서 축하하는 금혼식이라든지요. 그런 걸 볼 수 있으면 더 기쁘지 않을까요? 혹시 그런 내용도 준비하고 있나요? 



감독: 많이 괴로우셨죠?(웃음) 고통스러운 현실을 직면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해요. 영화가 불안한 삶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죠. 왜 그렇게 되는지, 그 환경 자체를 다루기 때문에 행복하게 보이지만은 않죠. 그렇지만 알면 세상이 덜 무서워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수 있으니까요. 제가 아직 탐구해야 할 영역이 많다고 생각해서 더 실험하는 길로 가보려고 해요. 제 인생관과도 연관이 있어요. 보통 인생은 다 고(苦)라고 하잖아요. 간혹 웃을 수 있는 행복한 순간들, 그 순간을 기억하고 좀 더 재미난 삶을 추구하며 살고 있어요. 아마 그런 부분들이 영화에 드러날 것이라 생각해요. 행복이 가득 차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없어요. 하지만 웃음이 나는, 견뎌볼 만한 힘이 나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영화 속에서 이묵 선배님, 다른 주인공들이 그랬듯이 저도 위안을 드리고 싶어요. 관객 분들이 그걸 느끼면 좋겠어요. 영화에서 혐오 세력은 풀샷으로, 주인공들은 클로즈업으로 다루고 있는데, 그 혐오 세력 개개인을 악마화 혹은 미화할 의도는 없어요. 혐오 프레임, 우리 사회가 변화해 나아가야 할 부분 자체를 보여주려 노력했어요. 주인공들의 존엄함과 힘을 통해 용기를 얻길 바라면서 영화를 만들었어요.



관객: ‘바지씨’, ‘치마씨’ 같은 은어를 여기서 처음 들어서 흥미로웠어요.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이 구분이 되어야 하는데 예전 용어들은 분리가 안 돼서 혼란이 있을 것 같아요. 관련된 이야기가 있나요? 그리고 영화 제목이 인상적이어서 잘 지었다고 생각했어요. 해외에서는 어떤 제목으로 상영했나요?



감독: 영어 제목은 <Troublers>,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에요. 중의적인 의미를 가진 제목을 지었어요. 바지씨의 ‘씨’는 우리말에서 성별 중립적인 용어인데 번역이 쉽지 않아요. ‘MR. 팬츠’라고 할 수 없잖아요.(웃음) 영화가 표현하는 바와 맞지 않아서 성별 중립적이면서도 뜻을 살리고,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표현을 많이 고민했어요. 영어는 주어가 ‘he’, ‘she’처럼 성별을 드러내는 명칭을 쓰는데 이묵 선배님은 남성이나 여성으로 지칭할 수 없어요. 어떻게 세계적인 추세 안에서 표현할 것인가 많이 고민했죠. 그리고 바지씨에는 다양한 분들이 있어요. 지금의 용어로 하면 트랜스젠더, 인터섹스(intersex), 부치(butch) 등일 수도 있지만 현재의 관점과 용어로 그 당시를 재단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재난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 커밍아웃을 한 논과 텐은 말한다.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계를 증명하기 위해서였다고. 이묵 역시도 성소수자 후배들이 당당히 사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며 흔쾌히 영화 찍는 것을 허락했다고 한다. ‘당신’이라는 호칭, 이 이인칭 용어는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혼자만의 세상이 아니기에, 나의 인권이 소중하듯 당신의 인권 또한 보장받아야만 한다. <불온한 당신>은 나 자신만의 세계를 넘어 상대방의 정체성과 인권까지도 존중하는, 관계 지향적인 마음가짐에 대해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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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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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 나라, 이웃 나라, 나라 아닌 나라 <올 리브 올리브>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7년 7 14일(금) 오후 7 40분 상영 후

참석 김태일, 주로미 감독

진행 이송희일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영농 님의 글입니다.



지금도 팔레스타인 분쟁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수없이 쏟아지고 있다. 두 집단의 갈등이 마냥 자극적으로, 폭력적으로 혹은 잠깐의 눈물을 목적으로 전시되는 게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을 느꼈다면 영화 <올 리브 올리브>에 주목해볼만 하다. 담담한 시선으로 팔레스타인을 담아낸 이 영화는 일상 같지 않은 일상을, 비상 같지 않은 비상을 복합적으로 전달한다. 자극도 눈물도 선사하지 않는다. 영화가 끝나고 덩그러니 남겨진 무언가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고 싶다면 이들의 남은 이야기를 들어보자. 김태일, 주로미 감독과 진행을 맡은 이송희일 감독이 함께했다.





이송희일 감독(이하 진행): <오월愛>(2010)와 <웰랑 뜨레이>(2012)를 잇는 ‘민중의 세계사’ 세 번째 작품인데 어떤 취지로 작업을 했는지, 이 작품은 그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차지하는지 궁금하다.



김태일 감독(이하 김): 사실 3부작까지 찍을 수 있을 거라고 예상은 못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나 상황,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떤 한 가지 입장에만 치우쳐있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제3세계의 이야기들에 있어서 우리가 알게 모르게 1세계 중심적 사고관을 전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관습에서 벗어나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목표를 품었다. 처음에는 매우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전문가적으로 찍어보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작업을 하는 방식은 원래 의도한 것이 아니다. 작품을 찍다보니 육아를 대신 맡아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과연 다 완성할 수나 있을까 우려를 많이 했는데 이렇게 극장에서 상영까지 할 수 있게 되어 좋다.



진행: 국내에도 다큐멘터리로 다룰만한 주제들이 많이 산적해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매우 특이하게 해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광주항쟁을 다룬 <오월愛>에서부터 시작해 캄보디아 내전 이야기를 담은 <웰랑 뜨레이>를 거치면서 과연 과거에 말씀하신 ‘민중의 세계사 10부작’을 완성하겠다는 포부가 정말 진행되고 있구나 생각을 했다. 10부작을 다 채우려면 앞으로 7편의 영화가 남았는데 <웰랑 뜨레이> 이후 5년 만에 새 작품을 내지 않았나. 영화 한 편에 5년의 제작 기간이 걸린다 치면 앞으로 7 곱하기 5...35년이 남았다.(웃음) 감독님 두 분이 제작자(제작사 ‘상구네’)이자 부부이다. <웰랑 뜨레이>에 아드님이 출연하는데 “나 영화 싫어, 이제 아빠 안 따라 다닐 거야.”하며 투정을 하는 장면이 있다. 어떻게 가족 시스템으로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주로미 감독(이하 주): 처음부터 가족 시스템으로 영화를 제작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처음 영화를 제작할 땐 아이들이 많이 어렸는데 지금은 상구가 21살이고 둘째가 중학교 3학년이다. 예전에는 부모가 하자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따라다녔던 부분도 있지만 지금은 그 안에서 각자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 다음 작품까지 아이들이 참여하게 될 지는 아직 미지수다. 저번 작품에서 상구가 투덜거렸는데 사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랬다. 이 작품 도중에 이스라엘에 잠깐 머물러야 했는데 가자마자 다들 스트레스에 시달려 서로 투덕거렸다. 가족끼리 작업을 하는 건 너무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촬영 현장에 들어가면 비교적 긴장감을 덜 수 있다. 아이들이 힘들어하긴 했지만 얼마 전에 얘기하기로는 다시 한 번 가고 싶다더라. 그 과정들이 아이들에게도, 우리 부부에게도 성장의 계기가 되는 것 같다. 다음 작품을 완성하는 데에도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진행: 이 작품은 팔레스타인의 이야기를 다뤘다. 어떻게 담겠다고 마음을 먹었는지, 제작 과정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주: 민중의 세계사를 기획할 때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바로 팔레스타인에 관한 것이었다. 첫 작품이 아니더라도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도 분쟁 지역으로 식민 지배를 받고 있는 유일한 국가가 팔레스타인이고, 건국된 지 70년이 된 이스라엘의 역사만큼 지배를 받고 있는 팔레스타인이 결코 우리와 멀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나면 앞으로 다른 이야기를 더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도 있었다. 그래서 지금 큰 난제를 해결한 기분이다. 분쟁 지역에 들어가기가 사실 쉽지는 않은데 우리가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니 단순 관광객으로 보여서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한편 작품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영어를 잘 못해서 어떤 물음이든 잘 모른다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게 오히려 도움이 되기도 했던 것 같다. 



김: 상당히 많은 가족들을 만났다. 분쟁 지역이다 보니 외국인을 비롯한 외부인들에게 마음을 쉽게 열지 않았다. 1차 촬영을 3개월 한 다음 1년 뒤에 2차 촬영을 갔다. 그때 그들은 ‘돌아온다는 말은 했지만 이렇게 진짜로 돌아올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그때부터 마음의 문을 아주 활짝 열어주었던 것 같다. 첫 촬영 때에는 아주 딱딱한 얘기들만 나눴었다면, 두 번째 촬영에서는 굳이 많은 질문을 던지지 않아도 아주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들까지 소상히 이야기해주었다. 헤어질 때에는 가지 말고 더 머물라고 몇 번씩이고 권유를 하며 서운해 해서 너무 고마웠다. 마치 가족들을 남겨두고 온 기분이다. 요즘도 가끔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아는 단어가 많지 않아서 짧게 건강 안부를 묻는 식이다.(웃음)





진행: 다르덴 형제가 원래 다큐멘터리를 찍다가 극영화로 진출하지 않았나. 이번 영화를 보면서 어떤 이동, 길 위에서 걸어가는 이미지들로부터 다르덴 형제의 느낌을 받았다. 감독님의 작품들 중 매우 새로운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떤 의도로 이런 작업물이 나오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주: 처음에는 팔레스타인의 여성들의 관점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싶었다. 흔히 아랍의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억압받고 자유롭지 못하다는 인식이 있지 않나. 그런데 실제로 그들을 만나서 느낀 점은, 그들이 외양적으로는 억압된 듯 보이지만 매우 낙천적이고 즐겁게 살아가고 있고 가정에서도 각자의 목소리를 자유롭게 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접근 방식으로 문제의 깊숙한 곳까지 접근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인물의 목소리를 내레이션으로 삽입하는 방식을 취해 내용을 끌어갈 수 있도록 했다. 길 이미지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는데 저희가 원래 걷는 걸 좋아한다. 시내에서는 조금 걸을 수가 있었는데 그 조금을 벗어나면 걸을 수가 없는 곳들이었다. 위험하다보니 차로 이동하는 일이 많았고 또 그 상황에서는 카메라를 꺼내기가 힘든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어쩔 수 없이 카메라를 들고 걸어가면서 찍을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김: 팔레스타인 곳곳에 난민촌이 있다. 예전에는 천막으로 되어있었는데 그대로 주거공간이 들어서게 되면서 그 사이 사이를 걸어 다니기조차 힘들어졌다. 그래서 그런 골목들을 걸어 다니면서 카메라에 담기만 해도 지금 팔레스타인이 처한 상황을 잘 전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덧붙여 팔레스타인의 특수한 문화가 있다. 큰 자식이 결혼을 하면 그 집의 바로 위에 가정을 꾸리고, 다음 자식이 또 가정을 이루면 다시 그 위에 집을 세우는 식의 문화가 있다. 그런 문화적 상황과 사회적 현실을 카메라에 잘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가 쓰는 카메라가 캠코더가 아니라 DSLR이었기 때문에 움직이는 영상을 잘 찍지 못했다. 그랬기 때문에 2차 촬영에서는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이동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더 많이 담고자 노력했다.



진행: 워낙 팔레스타인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많다. 그리고 해외에서 잘 팔리는 다큐멘터리는 어떤 극적인 서사나 장면을 담고 있는 것이라야 한다. 관객들의 말초신경이나 특정한 정서를 자극해야 하는 것이다. 그에 반해 이 영화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도 그들의 일상을 아주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감독님 입장에서는 유혹도 많았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담담하고 절제된 시선으로 작업을 한 배경이 궁금하면서도 대단하게 느껴진다.



김: 일상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했다. 말씀하신대로 팔레스타인 관련 다큐멘터리들은 자극적이고 폭력을 전시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방송콘텐츠진흥원에서 지원을 받아 멘토링 과정을 거쳤는데 외국에서 온 멘토가 이 작품을 하지 말라 했다. 일 년에 유럽에서 100편 가량의 팔레스타인 관련 다큐멘터리가 제작되는데 이 작품에는 그만큼 특별한 무언가가 없다는 이유였다. 많이 좌절했다. 내가 추구하려는 담담한 형식이 별로 먹히지 않는구나 싶어서. 그러나 개인적으로 팔레스타인이 마치 이웃처럼 느껴지게끔 전달하고 싶었고 기조는 잃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정말 그런 작품이 나왔다. 다음 작품에서도 꾸준히 이어가고 싶다.



진행: 말씀하신대로 이 작품의 담담함이 정말 이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자극적이지 않은 고유한 시선이 인상 깊은 영화다. 




 

관객: 지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지 않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해외왕래가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그 과정이나 절차가 궁금하다.


 

주: 우리가 간 곳은 서안지구다. 가자지구는 아예 봉쇄되어서 접근이 불가능하다. 서안지구도 왕래가 자유롭지 못하고 통제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분리장벽이 세워진 상태고 서서히 이스라엘 관할로 편입해가고 있는 상황이라 출입이 매우 어려웠다. 이스라엘에서 수감 이력이 있으면 예루살렘 방문도 금지가 되어있다. 한편 그런 와중에도 부유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하다는 점이 아이러니 했다.


 

관객: 현장에 가기 전 팔레스타인에 품고 있던 생각과 다녀온 후 바뀐 생각이 있을까.


 

주: 팔레스타인에 가기 전 조사를 하면서 자료를 보니 대부분이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것들이라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분명 이 사람들도 일상이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것들은 조명되지 못할까. 가서 보니 처음엔 정말 여기가 팔레스타인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평화로워 보였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니 느껴지는 답답함이 있더라. 앞서 말씀드린 대로 팔레스타인이라고 해서 먼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갖고 있는 감정선은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업을 하면서 그곳의 사람들과 가족과 같은 유대를 맺고 감정을 공유했던 기억이 깊게 남는다.


 

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로운 공존은 불가능한 것일까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두 집단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정말 그럴 것이다. 우리의 일상 중 많은 부분이 팔레스타인 문제와 연결이 되어있다. 가령 스타벅스만 해도 그렇다. 우리가 쉽게 이용하는 스타벅스 커피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무섭고 무거운 문제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일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나라가 아닌 나라, 팔레스타인. 이들의 현재는 우리의 과거와 닿아있다고 감독 김태일은 말한다. 거리를 조금만 걸어 다녀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커피전문점이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에겐 몸서리 쳐질 정도의 아픔이 된다면, 우리는 이렇게도 쉽게 소비하고 혹은 외면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이 갖고 있는 감정선은 똑같은 듯하다는 주로미 감독의 말처럼 분명 우리는 그들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존재이다. 또한 비슷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잔해에서 몸부림치고 있다면 더 더욱 그렇지 않을까. 나가 아닌 나에게 세심한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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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온한 당신한줄 관람평


송희원 | 광기와 재난에 맞서 "난 이렇게 살아"라고 외치는 사람들

이현재 | 당신을 비추는 거울. 그것은 벽이고, 어쩌면 문.

박영농 | 불온 혹은 불안

이지윤 | 불온하지도 온당하지도 않은 그저, 당신

김은정 | 내가 '나'이기 위한 조금은 어지러운 나열






 <불온한 당신> 리뷰: 불안한 당신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영농 님의 글입니다.



1.

우선 영화의 전개를 살펴보자. 영화는 ‘바지씨’ 이묵의 일상에서부터 출발한다. 이묵은 카메라 앞에서 20세기 한국의 성소수자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말한다. 그리고 그를 ‘선배님’이라 호칭하는 감독 이영은 지극히 담담하게 그 모습을 담는다. 동네 구멍가게 앞에서 이웃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소박한 반찬에 끼니를 때우는 지극히 담담한 그 모습. “남자여, 여자여?” 동네 어르신들의 호기심 어린 물음에 이영은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런 걸 왜 물어봐” 이묵은 대신 대답한다.




 

2.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족속들처럼 여겨지는 성소수자들. 그들의 출현은 과연 시절이 수상해 그런 것일까. 이묵은 20세기의 서울 곳곳에 모여 살았던 성소수자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성소수자는 요즘에서야 생겨난 족속들이 아니다. 언제나 존재했다. 그들은 나름의 공동체를 형성해왔으며 주기적으로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소박한 반찬에 끼니를 때우는 등 지극히 ‘주류’적인 모습으로 존재해왔다. 그들의 후배를 자처하는 감독 이영은 카메라를 매개로 강제된 단절과 공백을 간결한 필치로 메우고 있다.

 

3.

20세기 국가는 성소수자의 친목을 용납하지 않았다. 여자 깡패들이 모여 데모를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국가는 불안했다. 데모가 불안했고, 데모로 이룩될 민주주의가 불안했고, 민주주의 이후 모두의 존재가 함부로 부정될 수 없는 그 세상을 불안해했다. 해소되지 않는 불안은 명확한 적을 필요로 하고, 그들을 제거함으로써 불안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라는 환상을 필요로 한다. 모두의 존재가 함부로 부정될 수 없는 세상을 겨냥한 불안은 빨갱이라는 적을 설정했고, 빨갱이를 제거하면 모든 불안이 해소될 것이라 믿도록 했다. 존재를 부정당하지 않길 바랐던 성소수자들은 자연스레 빨갱이가 되었고, 해소되어야만 했다.

 




4.

카메라는 21세기의 한국으로 시선을 돌린다. 박근혜 정권을 비호하는 시위가 한창이다. 성소수자들 때문에 나라가 시끄러워졌고, 나라를 시끄럽게 하려는 목적은 적화통일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므로 따라서 성소수자들은 빨갱이라는 정식이 여전히 유효하다. 제거의 대상인 성소수자들은 한편 가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섹스에 중독된 정신병자들은 충분히 가엽고 다시 ‘주류’로 수복해야할 대상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성소수자’라는 정식은 나름 일관성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또한, 한국의 20세기와 21세기는 일관성이 있어 보인다. 대를 이어 통치하고 있는 왕을 보니 더욱 그럼직하다.

 

5.

카메라의 시선이 향하는 혐오 시위의 현장에는 이전 장면에서도 보았던 얼굴들이 반복 등장한다. 국정원 불법 대선 개입 조사 반대, 세월호 특조위 연장 반대, 퀴어문화축제 반대 등 다소 거리감이 있는 개별 주제들을 총 망라하는 이들이다. 이들의 주장에서 공통되는 키워드는 ‘반대’이다. 얼마 전 알게 된 사실을 덧붙이자면 그 모든 반대의 기저에는 청와대의 보조금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세금으로 반대를 샀다는 걸까. 참 일관적이다.

 




1-1.

불안은 일관적이다. 불안은 일관적으로 불온을 만든다. 불온한 당신이 있다면, 불안한 당신이 있다는 뜻이다. 당신은 불온한가 아니면 불안한가. “불온혀, 불안혀?” 이 호기심 어린 물음에 누군가는 어쩔 줄 몰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런 걸 왜 물어봐, 누군가의 누군가는 대신 대답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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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6 소소대담] 여름의 영화, 여름의 우리 


참석자: 송희원, 이현재, 박영농, 이지윤, 최지원, 김은정
('소소대담'은 매달 진행되는 인디즈 정기 모임 중 나눈 대화 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윤 님의 글입니다.





[리뷰] <컴, 투게더>: [주의] 외면하지 말 것! http://indiespace.kr/3421



이지윤: <컴, 투게더>는 궁극적으로 희망을 이야기하려 했던 작품이라 생각한다. 암담한 현실 속에서 서로를 끌어안는 인물들의 모습에 감동을 느꼈다. 다만 작품이 전달하려는 희망이라는 메시지가 개인적으로 와 닿지는 않았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어떤 암담함 내지는 찝찝함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부조리한 사회에 어떤 변화도 없었다는 점이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킨 원인이라 생각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와 닿는 감정이 모두 다를 것 같은데, 다들 영화를 어떻게 봤는가?

박영농: 지윤 님의 감상과 비슷하다. 영화 내내 찝찝한 기분이 들었고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나서도 그랬다. 한 가정이 우여곡절을 겪고 마침내 ‘컴, 투게더’한다는 내용에서 사라진 부분은 그들 각자가 저지른 문제들과 그에 대한 책임이다. 사회의 부조리를 그대로 둔 것과 더불어 그들은 저마다 사회 내에 부조리와 같은, 혹은 더 부조리한 방식으로 죄를 저질렀단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면처럼 하하 호호 웃으며 끝난다면 병실에 누워있는 사람들,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갈 학생 등 주인공들의 주변부에 위치해 인생의 변곡을 겪은 이들은 과연 ‘컴, 투게더’ 할 수 있을까? 주인공들은 모두 부조리한 사회에서 탈주한다. 그런데 제목은 ‘컴(come), 투게더’이다. 왜 ‘고(go), 투게더’가 될 순 없었을까. 영화 전반에 서린 회피와 무책임에 그 답이 있을 것이다.

최지원: 영화 내내 크고 작은 폭력들이 돌고 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상처를 받은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폭력이 순환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갑자기 희망을 얘기하는 영화의 결말이 조금 아쉬웠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비극적으로 결말을 맺었다면 더 위로가 되었을지 모르겠다고 느꼈다. 영화의 인물들이 굉장히 현실적이라 좋았는데, 그래서 결말이 조금 어울리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김은정: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가족의 어려움을 고루 담고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보통 한 가지 주제만을 정해서 그것을 깊이 있게 조명하는 작품이 많은데 <컴, 투게더>는 한 가족 속에서 각자의 고민과 아픔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좋았다. 그리고 적당한 정도의 극적 요소가 있는 것도 좋았다. 살짝 과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영화에 잘 몰입할 수 있었다.

송희원: 왠지 모르게 상징이 과하게 쓰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등장인물이 뛰거나 냄새를 못 맡는 것이 감독이 얘기하고자 하는 바를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 같아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현재: 영화가 일부러 어색한 결말을 선택한 것 같다. 나 또한 영화의 결말이 어색하다고 느꼈다. 고생 끝에 고생만 남았는데 그것이 희망이라는 게 부조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희망이라는 막연한 기대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 부조리한 감정 내지 전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인물을 동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으나 어떻게든 캐릭터들에게 웃는 장면 하나 정도는 주려고 했던 거 같다. 그게 이 영화의 위로라면 위로일 텐데 나에게는 그 위로가 조금 차갑게 느껴졌다.





[리뷰]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 잊혀진 꿈의 악보 http://indiespace.kr/3448
[인디토크 기록]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 다큐멘터리가 나에게 걸어올 때 http://indiespace.kr/3465


이지윤: 고려인 여성 인물들의 삶을 다루는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는 주변인과 소수자에 대한 고찰로까지 이어진다. 또한 작품이 그런 이야기를 굉장히 미학적이고 독특한 방식으로 다뤘다는 생각이 든다.
 
이현재: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고려인들을 굳이 한 민족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화는 좀처럼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대신 연해주를 떠돌면서 이야기를 채집한다. 영화는 떠돌다 고려악단의 공연 푸티지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그 반복이 영화의 리듬을 만들고 여기저기 흩어진 자료들을 한 곳으로 정리할만한 대상을 형성하는 것 같다. 그게 사람마다 다르게 보이긴 하겠지만 나는 그 대상이 방 타마라 선생으로 보였다. 방 타마라 선생이 나오는 장면마다 과거가 과거로만 머물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 인물을 통해 과거가 과거일 수만은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 다큐멘터리의 좋은 점이 있다면 자료를 멈춘 존재로 보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박영농: 독립영화 인터뷰 매거진 NOW에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를 소개하는 글을 썼다. 무엇보다 다큐멘터리의 소재로 고려인이라는 특정 집단에 대해 그렇게 끈질기게 매달린다는 게 여러 여건상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100분에 가까운 시간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열정 혹은 동력이 존경스러웠다. 동시에 영화에 나오는 음악들이 너무 좋았다. 개인적으로 고백하건대 조금 취향이 올드하지만 그런 20세기 가요들을 매우 좋아한다. 아마 조부모님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탓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도 고려인들에 대해 연구를 오랫동안 해 오신 아버님께 이 영화를 바친다는 감독의 메시지가 뜨더라. 그 메시지를 보면서 이 영화의 동력과 내가 이 영화 속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한 의문, 두 가지 물음이 한꺼번에 해결된 듯했다. 뿌리라고 표현을 해도 될까. 그랬다.

김은정: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고려인이 어떤 사람들을 이르는 말인지 잘 알지 못했다. 여성 예술가의 이야기를 했다는 점에 있어서도 큰 의미가 있지만 그에 앞서 고려인의 존재에 대해 상기시킬 수 있는 좋은 영화였던 것 같다. 중간 중간 삽입되는 당시의 음악들과 인터뷰 영상을 보며 마치 한국도, 러시아도 아닌 제3세계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신기한 체험이었다.

송희원: 연출 방식보다 고려인 여성들이 부르는 노래 자체가 매우 힘 있게 느껴져 인상적이었다. 노래에서 강인함이 느껴졌다.





[리뷰] <노무현입니다>: 안녕하세요, 제가 노무현입니다 http://indiespace.kr/3445


이지윤: 노무현을 다룬 영화의 등장이 낯설지 않았다. 극영화였던 <변호인>(2013), 다큐멘터리 <무현, 두 도시 이야기>(2016), 그리고 저널리즘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에서도 노무현에 대한 이야기는 종종 등장하곤 한다. 정치인 중에서도 노무현을 회상하는 영화가 유난히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노무현입니다>가 취한 인물을 기억하는 방식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송희원: 아직도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노무현입니다>는 노무현이란 인물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란 생각이 들었다. 인물에 대한 정치적인 평가, 과오보다는 그의 인간적이고 따뜻한 모습을 더 많이 부각시켰던 것 같다.

이현재: 보면서 복잡한 심정이 들었다. 지난 9년을 지나면서 ‘정치의 일상화’라는 말은 더 이상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지향점이 된 것 같지 않다. 그렇다고 이게 좋은 결과를 가져왔나 생각해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다만 ‘정치의 일상화’ 혹은 ‘일상의 정치’는 현안문제가 되었다는 생각은 강하게 든다. 그렇다면 그 답을 어쨌든 현안에서 찾아야 하는데 오른쪽에서는 박정희로, 왼쪽에서는 노무현으로 찾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정치라는 걸 인지하기 시작한 게 딱 노무현 대통령 임기 말 때부터이다. 그래서 왜 사람들이 노무현을 그리워하는지 정확하게는 알지 못한다. 그냥 그런 시절이 있었고 그 시절이 좋았다는 것만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러나 내 눈에는 사람들이 노무현이라는 상징을 너무 그리워하는 것 같고 그게 현안을 돌파할 뚜렷한 답이 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노무현입니다>를 보면서 내가 느낀 것은 영화가 꽤 활발함에도 불구하고 막연한 그리움의 정서가 강하다는 것과 딱 그만큼 노무현을 원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이었다. 노무현에 대한 회고를 통해 노무현이라는 인물을 일종의 목표로 삼고 있는 것 같은데 건강한 현상 같지는 않다. 현안문제에 대한 답은 언제나 현안에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한 편으로는 건강하지 못한 시간 속을 지나왔으니 건강하지 않은 현상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박영농: 사실 노무현 대통령 재임기간에는 어렸기 때문에 여러 화두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했다. 영화는 그의 과거 영상들과 남은 주변인들의 회고들을 잔잔히 들려준다. 노무현에 대한 사적인 평가, 혹은 사회의 공적인 평가와 상관없이 그냥 보기 좋았다. 또 그가 정치계에 몸을 담고 있었을 때와 지금의 사회를 함께 생각하면서 봤다.

최지원: 이런 영화가 나올 때구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노무현만큼 상징적인 사람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개인적으로 평소에 그가 너무 신격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충분히 이야기될 만한 시기이고 사람인 것 같다. 영화가 노무현을 이야기하는 방식도 정치적 면모가 아니라 인간적인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굉장히 전기(傳記)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것이 지금 사람들이 원하는 정치인의 모습에 응답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래서 다른 점보다도 노무현의 인간적인 모습이 부각되는 것 같다. 

김은정: <노무현입니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는 영화라기보다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궁금하게 만드는 영화인 것 같다. 그와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를 그리워하고 칭송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도 실제로 그를 만나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또한 작품은 그를 ‘정치인 노무현’이 아니라 ‘정치인들 속 인간 노무현’으로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리뷰] <꿈의 제인>: 
불행과 함께 살기
 http://indiespace.kr/3446
[인디토크 기록] <꿈의 제인>: 공(O)존 http://indiespace.kr/3488


이지윤: <꿈의 제인>은 사랑해마지 않는 영화다. 함께하고 싶고, 외롭고, 사랑받기 위해 조용히 몸부림치는 작품 속 소현에게서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 소현에게 잠시나마 행복을 선사한 제인이란 인물이 말 그대로 ‘꿈의 제인’이었기 때문에 느꼈던 슬픔이 굉장히 컸다. 행복이 없지만 있다고 믿고, 현실을 해체하고 나서야 비로소 행복한 꿈이 만들어 진다는 필연적인 비극성 때문에 한동안 마음이 먹먹했다.

김은정: 사실 그다지 기분 좋은 영화는 아니었다. 소현의 아픔과 현실이 결집되어 만들어진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사실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소현이라는 캐릭터는 영 정이 안 간다. 이런 면에서 보면 소현이라는 캐릭터를 만들고 표현해내는 데에 큰 성공을 거둔 것 같다. 그녀가 왜 사랑받을 수 없고 그녀를 왜 사랑할 수 없는지를 영화가 끝날 때쯤에는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내 생각에 그녀를 지나쳐간 많은 이들이 그녀에게 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은 것은 표현하기 어려워서일 수도 있지만 그녀에게 그런 사실을 이야기해줄 정도의 충분한 애정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 같다. 

송희원: “어떻게 하면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소현의 대사를 듣는 순간 마음이 먹먹해졌다. 나는 어렸을 때도, 성인이 된 지금도 정말 그것을 잘 모르겠더라. 성인이 되어선 그래도 친한 ‘척’ 할 수는 있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소현의 대사를 듣고 어렸을 때 모습이 떠올라 가슴 아팠다.

이현재: 나 또한 이 영화를 애정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소현이라는 캐릭터 때문이 아니라 구교환 배우가 연기한 제인 때문에 애정한다. 감독도 자기가 디자인한 캐릭터 중 제인을 몹시 애정하고 있는 상태에서 영화를 시작한 것 같았다. 구교환 배우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카메라에 배우가 너무 잘 잡혀서 이 영화를 좋아한다. 이 점이 없었다면 <꿈의 제인>을 좋아하진 않았을 거 같다.

박영농: 한 번 보는데도 체력 소모가 엄청난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 보면 더 좋은 영화인 듯하다. 영화가 공존, 팸 등에 대해 방점을 찍고 있는 듯한데 그것이 <꿈의 제인> 스태프 모두가 하나의 팸이 되어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지원: 영화가 전체적으로 섬세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고 하나의 서사가 아니라 여러 개의 서사가 얽혀있다는 점이 연출적으로 가장 좋았다. 이야기가 전환되지만 어떤 이야기 속에서든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비극성이 잘 와 닿았다. 그리고 이민지 배우의 연기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눈치 보는 것에 익숙하고 모나지 않게 행동하려고 늘 움츠러들어있는, 그러면서도 결코 순진하지는 않은 소현이란 캐릭터에 마음이 많이 갔다. 하고 싶은 얘기를 간결하고 섬세하게 하고 있는 영화인 것 같아서 그 자체로 좋았던 것 같다. 





[리뷰] <델타 보이즈>: 우리는 대책이 없고 무엇 하나 쉬운 것도 없다 http://indiespace.kr/3457
[인디토크 기록] <델타 보이즈>: 허기지고 빛나는 꿈을 노래하다 http://indiespace.kr/3473


이지윤: <델타 보이즈>는 독특한 힘을 가진 영화라고 생각한다. 절반 이상이 배우들의 애드리브로 이루어진 대사와 롱 테이크. 여백이 많다고 느꼈는데 그런 허전한 듯한 여백이 작품의 주제의식과 잘 맞물린다고 느꼈다. 다들 작품을 어떻게 봤는가?

최지원: 살짝 취해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영화였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점에서 보기가 힘들기도 했지만 독특한 분위기와 특유의 유머감각이 인상적이었다. 

김은정: 정말 재미있게 보았다. 주인공들은 마땅히 묵을 곳이 없어도, 삼시세끼 라면만 먹어도, 그런 것쯤은 신경 쓰지 않는다. 억지로 슬프게 꾸며 내지 않아서 좋았다. 준비했던 대회가 취소되는, 비극적이지만 현실적인 상황이 쭉 이어진다. 그냥 아주 평범한 일상, 오늘도 어제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은 그런 나날 속에서 벌어지는 작은 사건과 사고들, 많이 기쁘지도 많이 슬프지도 않은 그저 그런 일들. 특별한 이야기를 하려고 애쓰기보다 진짜 내 삶에서만 특별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무척 행복한 영화였다. 또한 주인공들 간의 호흡이 굉장했던 것 같다. 각각의 캐릭터도 굉장히 입체적으로 느껴졌다. 등장인물들 모두가 굉장히 개성이 뚜렷한 편이라서 자칫하면 중구난방으로 보이기 쉬웠을 것 같은데 이야기에 잘 녹아든 것 같다. 특히 준세와 지혜 부부의 케미는 두말하면 입 아프다. 감독과 배우들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송희원: 가끔 캐릭터가 너무 과해서 이해가 가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배우들의 연기만큼은 정말 생생하게 느껴졌다. 허전하게 느껴졌던 것은 아마도 감독이 오디션 프로그램식의 드라마틱한 장면을 만들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것이 더 현실과 비슷하게 느껴져서인지 영화가 오디션 프로그램보다 훨씬 여운이 오래갔다.

이현재: 보고서 좀 놀란 영화였다. 카메라가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첫 장면부터 공장에 들어갈 때까지의 장면에서 이 점이 마치 ‘어떻게 하나 두고나 보자’라는 태도처럼 보였다. 그런데 한 10분 쯤 보면 카메라를 안 움직인 게 아니라 못 움직인 것 같이 보인다. 그리고 30분 쯤 지나면 이 생각에 확신이 든다. 배우들도 애드리브를 치는 게 선택 같지 않고 할 수 있는 게 이 방법 밖에 없어서 이렇게 연기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면서 영화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어설프고 가난한 흔적이 하나하나 쌓여서 어느 순간 분위기를 만들고 그 분위기를 통해 이 캐릭터가 사는 곳이 어떤 곳인지 감지할 수 있게 만든다. 감독이 현장에서 어떻게 배우와 카메라 사이를 조율하고 공간을 어떻게 디자인해야겠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찍은 거 같은데 그 결과가 놀랍다. 보자마자 고봉수 감독을 찾아보았다. 최근에 <튼튼이의 모험>이라는 영화를 찍었던데 이 영화는 꼭 볼 거 같다.





[리뷰] <파란나비효과>: 파란나비들의 날갯짓으로 http://indiespace.kr/3476



이지윤: 정치를 소재로 한 영화가 유난히 많았던 한 해다. 지난달의 <더 플랜>도 그렇지 않았나. <더 플랜>과 <파란나비효과>는 시의성 있는 정치적 사건을 다룬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지만 두 작품 사이에는 차이점도 존재한다. <더 플랜>이 팩트 체크에 초점을 맞췄다면 <파란나비효과>는 사람들의 사연과 감성에 초점을 두었다. <파란나비효과>가 택한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송희원: SNS에서 <파란나비효과>를 꼭 보라는 추천을 많이 받았는데 보고나서 왜 보라고 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엄마들의 간절함과 절실함이 느껴져서 <더 플랜>보다 더 몰입해서 봤던 것 같다.

이현재: 박문칠 감독의 전작 <마이 플레이스>(2013)를 좋게 보았다. 개인의 체험과 기록들에서 사회적 사건과 역사들을 하나하나 꺼내는 작품이었다. 이런 방법을 <파란나비효과>에 고스란히 옮겨온 것 같았다. 그러나 자신의 정치적 체험을 고백하는 장면들보다도 그 현장을 채집하는 와중 은연중에 나온 말들이 인상적이었다. 한 분이 “아무것도 안하면 불안해서 손을 놓을 수가 없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에서 박문칠 감독과 그가 찍은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 수 있었다. 굳이 정치적 각성 같은 것에 집착하기보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솔직히 밝히고 대상을 바라보는 게 내 마음을 훨씬 움직이는 것 같다.

박영농: 몇 달 전만해도 이런 영화는 개봉마저 불투명했을 것이란 사실이 정말 새삼스러웠다.

최지원: 재밌게 보았다. 일단 여성들이 작품을 끌어가고 있다는 점이 좋았고, 두 번째로는 극단에서 극단으로 변화해가는 인물들을 비추는 방식이 흥미로워서 좋았다. 정치 다큐멘터리는 남성주도적인 경우가 많은데 <파란나비효과>에서는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근래 봤던 영화 중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가장 힘 있게 들리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또 사드를 겪으면서 자신의 이전 모습을 반성하고 광주, 강정, 세월호 등의 다른 사건들까지 이해하게 되는 인물의 모습에서 당사자성과 연대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김은정: <더 플랜>이 다룬 선거 이야기가 지역에 상관없이 우리나라 전 국민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면 <파란나비효과>가 다룬 사드 배치 문제는 1차적으로 성주라는 지역에만 해당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이것도 사실은 전 국민과 관련된 문제이지만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사람들의 사연과 감정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한 것은 좋은 방법이었던 것 같다. 타 지역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며 그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사드 배치라는 사건을 관객들이 조금 더 가까이 느낄 수 있게 하는 좋은 방식이었다. 




이지윤: 추운 겨울에 만났던 것 같은데 벌써 더운 여름이 와버렸다. 더워진 날씨는 인디즈로 활동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동안 인디즈 활동에 대한 소감이나 남은 인디즈 활동에 대한 바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김은정: 안 끝날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이제 인디즈 활동에 제법 익숙해 진 것 같다. 인디즈 활동을 통해 그 전에는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정치적 사건들에 대해 눈을 뜨게 됐다. 또 인디토크에서는 배워갈 것도 많아 정말 좋았다. 앞으로 남은 기간도 잘 활동하고 싶다. 

최지원: 아쉽고 후회가 많다. 인디즈 활동을 통해서 다양한 작품을 많이 접하게 되는 것 같다고 자주 생각한다. 어떤 때는 너무 좋은 작품을 만나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나와 맞지 않는 작품을 만나서 괴롭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과정 자체는 늘 즐겁다. 남은 기간 동안 즐겁게 활동할 수 있으면 좋겠다. 

박영농: 지나고 보니 아쉬운 점이 많다. 나는 이 활동을 하면서 받아가는 것들이 많은데 과연 나는 그만큼 뭔가를 주었을까. 아닌 듯하다.

이현재: 처음에 영화보고 싶다고 들어와서 영화만 봤지, 글은 못 남기는 것 같다. 남은 기간 동안 열심히 해서 반드시 좋은 기사로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겠다는 다짐과 그간의 나태를 반성한다.

송희원: 최근에 <노후 대책 없다>의 인디토크 기록을 했다. 변영주 감독님과 김태용 감독님이 진행을 했고, 영화의 이동우 감독과 송찬근 출연자가 함께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에 대한 마음가짐, 태도, 의지 등에 대해서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 정말 뜻 깊은 자리였던 것 같다. 다른 분들도 한 번씩 그 기록을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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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리브 올리브한줄 관람평


송희원 | 다시 이 땅에 올리브 나무를

이현재 | 올리브 나무 사이로, 사람이 산다

이지윤 | 올리브 나무를 심는 사람들

김은정 | 정의란 '뭣'인가?






 <올 리브 올리브> 리뷰: 다시 이 땅에 올리브 나무를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희원 님의 글입니다.



점령은 삶을 파괴했다. 모든 것이 금지되었다. 자신의 땅에서 내쫓겼고, 다시 그 땅에 들어가기 위해선 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 부당한 상황에 저항하자 일상을 영위하기 힘들어졌다. 어떤 이들은 죽었고 살아남은 자들은 감옥에 갔다. 여자들은 일을 구하지 못하는 남자들을 대신 해 직장을 얻어야 했다. 이스라엘 점령으로 자신의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 고향으로부터 이방인이 되어버린 사람들. 바로 <올 리브 올리브> 팔레스타인인들의 이야기다.  





서안지구 나블루스 주의 작은 마을 세바스티아에 거주하는 위즈단은 워킹맘으로 평범하지만 분주한 일상을 보낸다. 위즈단의 부모님은 오래전부터 올리브 나무를 수확해 10남매를 키워냈다. 올리브 나무는 팔레스타인 인구 70%의 주 수입원인 동시에 그들의 민족성과 역사를 상징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점령으로 그 올리브 나무가 뿌리 뽑힐 위기에 처했다. 선조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올리브 농장은 이스라엘 점령 하에 일 년에 단 열흘만 통행이 허락된다. 우물을 파는 것마저도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접경지 주민들의 집과 사원이 피해를 당했다. 농경지 주민들 가옥 역시 공격으로 무너져 이제 그들은 구호단체 텐트에서 생활하며 가축을 돌본다.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인들의 통행의 자유를 거두어가는 동시에 그들을 ‘지붕 없는 감옥’에 가둬놓고 숨통을 조인다. 인티파나(intifada, 이스라엘의 통치에 저항하여 팔레스타인인들이 일으킨 봉기) 때 자식을 세 명 잃은 무함마드 할아버지와 그 통한으로 온갖 병을 얻은 할머니. 반란 운동에 참여하다 친구를 잃고 11년 동안 감옥에서 젊음을 보내야 했던 알리. 역시 인티파나에 참여했다가 일자리를 잃고 지금은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핫산. 그리고 영화 내레이션을 맡아 자신의 아이들과 남편의 일상을 들려주는 위즈단까지. 카메라는 그동안 말해지지 않았던 팔레스타인 개개인의 삶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본다. 





가족 프로덕션 ‘상구네’의 김태일, 주로미 감독은 아들 상구, 딸 송이와 함께 팔레스타인에 갔다. 약 2년간 현지인들과 함께 살며 가까이서 촬영했기에 그들의 힘 있는 증언 그대로를 담아낼 수 있었다. 그들의 증언에는 분노와 한이 서려 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기록되지 않은 이들의 기억은 그렇게 <올 리브 올리브>에 차곡차곡 담겼다.  





팔레스타인인은 다음 세대에게 그들의 역사와 현재의 참상을 알리려 노력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기억된 과거뿐이기에 자신의 아이들에게 필사적으로 말하고 또 말하는 것이다. 수많은 죽음과 희생을 기억하고 또 알려서 그들의 잃어버린 땅을 다시 찾아야 한다고. 결코, 이 역사를 잊어선 안 된다고. 비록 그들이 가진 유일한 무기는 오직 구호와 돌멩이뿐일지라도 말이다. 어쩌면 감독은 그 모습을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직접 보여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루에 다섯 번 예배시간을 알리는 소리처럼 그들의 고통스러운 일상은 계속된다. 하지만 그들이 행복하게 살고 싶은 곳 역시 고통스러운 바로 이곳, 점령 받고 있는 팔레스타인 땅이다. 높은 분리 장벽 앞에서 자신의 아이들에게 더 이상 좌절을 안겨주지 않기 위해 그들은 다시 이 땅에 올리브 나무를 심고 행복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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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미경의 작은 우주 '인디돌잔치' <우리들>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7년 6 27일(화) 오후 7 30분 상영 후

참석 윤가은 감독

진행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현재 님의 글입니다.




아이들의 세계는 누구나 한 번 거치게 된다. 그러나 그 세계가 어떠했는지 기억하는 것은 쉽지 않다. 기억은 마치 편집 전의 영상조각들 같아서 어떻게 편집하는가에 따라 그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래서 아이들의 세계는 종종 너무 낙관적으로 그려지거나 비관적으로 그려진다.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은 이러한 아이들의 세계에 관한 현미경이다. 전체를 볼 수 없지만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들>이 개봉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윤가은 감독 본인의 영화가 이제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들어보았다.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이하 김): 감독님께 오늘 참여하게 된 소감부터 들어볼까요?



윤가은 감독(이하 윤): 이 영화를 오랜만에 극장에서 보았습니다. 개봉 전 시사회 이후에 볼 용기가 없었습니다. 아직 기억해주시고 많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김: 저도 오늘 이렇게 많이 찾아오실 줄 몰랐는데, 오히려 제가 더 감동받은 것 같습니다. 감독님께서 영화는 꼭 극장에서 보라고 많이 권유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본인의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 것이 두려웠나요?



윤: 이 영화를 편집할 때 하루에 열 시간 이상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이렇게 하는 게 좋았을 텐데’ 같은 후회만 남더라고요. 그리고 관객 분들이 좋아해줄지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김: 오늘은 어땠나요?



윤: 이 영화의 조감독이자 저의 가장 친한 친구가 같이 와줬는데 계속 제대로 안 된, 실수한 것만 보였습니다.



김: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제일 거슬렸던 부분이 어떤 부분인지 여쭈어 봐도 될까요?



윤: 모두 밤샘 촬영을 해서 정신없던 장면인데, 사랑분식에 다들 앉아서 학원을 보내니 마니 하는 장면이 있어요. 거기에서 할머니가 지아 소풍날 싸갈 김밥을 받아가야 하는데, 그 김밥 케이스에 아무것도 안 들어있었어요. 무게감이 없는 게 너무 잘 보여서 부끄러웠습니다. 관객들이 웃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 속에서 봤어요.



김: 지난 1년의 시간이 감독님에겐 어떤 시간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윤: 사실 영화를 만들면서 정식 개봉을 할 거라는 기대가 없었습니다. 해외에서 상을 타게 되면 기념 삼아서 1-2주 정도 상영해야겠다는 생각정도만 가지고 있었지,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습니다. 찍을 때는 스태프들과 좋은 기억을 가져간다는 의의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우연찮게 좋은 배급사를 만나 개봉을 한 덕에 많은 관객 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김: 이 영화와 함께 영화제를 통해 이곳저곳 여행을 다녔습니다. 혹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윤: 슬로베니아의 조그마한 마을에서 하는 영화제에 초청된 적이 있어요. 그 곳에서 만난 관객분이 “이거 내 이야기에요”라고 말씀해주실 때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래도 어딜 가나 어린이 관객을 만나는 게 제일 재미있어요. 어린이 관객들이 있는 곳에서 질의응답을 하면 엉뚱한 질문들이 나와요. “한국에서도 ‘포켓몬 고’ 하나요?” 같은 질문이 나와서 그 시간 내내 관객들과 게임 이야기만 한 경우도 있어요.





김: 저는 이 영화를 보고 실팔찌, 봉숭아, 김치볶음밥 같은 다양한 오브제들이 떠올랐습니다. 감독님에게 가장 마음에 남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윤: 쉽게 찍은 장면이 없어서 그런지 장면보다는 그걸 찍었던 현장이 떠올라요. 그럼에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김치볶음밥 장면이에요. 그 장면은 정말 제가 한 게 없어요. 약간의 아동학대를 했어요.(웃음) 배우들의 저녁을 굶긴 상태에서 찍은 장면이거든요. 연출은 윤이한테 “지아 누나가 손님이니까 지아 누나가 먼저 먹는 거야. 그 다음에 네가 다 먹을 수 있어.”라고 이야기 한 것 밖에 없어요. 강민준 배우는 그 전까지 배가 고파서 짜증이 나있던 상황인데, 미술감독님이 해준 김치볶음밥이 정말 맛있었나 봐요. 배우들이 정말 맛있게 먹더라고요. 그래서 인서트로 들어갈 2컷만 찍고 나머지는 롱테이크로 돌린 것 중에서 편집자가 골라낸 장면으로 만든 장면이에요. 이 장면에서 나오는 대사들은 거의 다 애드리브였어요. 윤이가 “우리 엄마가 이런 식으로 김치볶음밥을 해준다”라고 입을 트기 시작하니까 방언 터지듯이 막 대사들이 나오더라고요. 배우들이 만들어낸 장면이에요. 그래서인지 관객 분들이 이 장면을 제일 좋아해주시고, 저도 이 장면을 볼 때마다 마음이 좋아져요. 학원에서 싸우는 장면을 제외한 아이들이 싸우는 장면들이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어요. 싸우는 장면을 찍어야 할 때마다 상황을 주고 배우들이 자기 언어로 말할 수 있게 했어요. 그랬더니 “시치미 떼지 마”라고 하고 “시치미는 너잖아” 같은 말도 안 되는 대사들이 나오는데, 말이 되더라고요.



김: 이런 연출법에 장단점이 있을 거 같아요.



윤: 배우들이 즉흥연기를 할 때 가장 재미있어 한 건 저였어요. 아이들이 자기 말을 하는 게 재밌어서 5분 넘게 컷을 외치지 않은 적도 많았어요. 상시 투 캠을 돌렸는데, 그 때마다 촬영감독님 허리가 나가는 줄도 모르고 지켜봤어요. 투 캠을 돌린 이유는 한 배우가 좋은 연기를 하면 상대도 좋은 연기가 나오기 때문이에요. 그렇지만 이렇게 찍으면 정확한 조명과 동선을 디자인할 수 없어서 앵글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겨요. 그걸 커버하기 위해서 스태프 분들이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너무 고맙고 미안해요.



김: 배우들을 조금 독특한 방법으로 캐스팅했어요. 그렇게 한 이유가 있나요?



윤: 아역배우들을 오디션하다보면 조금 무서워요. 20분 동안 개인기를 하고 주어진 상황을 연기하는데, 감정이 격한 장면이 들어가 있으면 아이들이 막 웃었다가 울었다가 해요. 혼자 원맨쇼를 하는 거잖아요. 저는 이런 상황이 무섭고 좀 폭력적인 방법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1차에는 1대1로 저와 그냥 수다를 떨었어요. 그러다보면 이야기가 되는 친구들을 만나요. 예를 들면 웃기려고 한 이야기에 굳이 안 웃어주더라도 반응이 편한 친구들이 있어요. 리액션이 있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제 이야기를 들어주는 거죠. 그 다음에 연극놀이 같이 즉흥극을 했어요. 그러면 뽑혀야겠다는 생각 없이 다들 즐기면서 연기를 해요. 자기 행동과 말로 솔직하게 반응하는 배우를 찾아서 캐스팅을 했습니다. 의도한 건 아닌데 다 뽑고 나서 보니까 연기 경험이 거의 없는 친구들이더라고요. 그래서 그 친구들을 데리고 리허설을 많이 거쳤어요. 저와 그 친구들 모두 처음이니까 함께 만들어가는 기분으로 영화를 만들어간 것 같아요.



김: 이 영화의 오프닝을 굉장히 좋아해요. 아이들이 피구를 하기 위해서 한 명 한 명 편을 뽑아가잖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피구를 아주 싫어했어요. 플레이어들을 무대 위로 밀어 넣고 공을 맞춰서 나가라고 하는 게 아주 굴욕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영화를 보며 피구를 사용해서 어떤 의미를 담으려고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윤: 리뷰 등에서 피구에 대해 정말 다양한 해석이 있더라고요. 저 어릴 때 인기 종목이 피구였어요. 요즘 아이들한테 물어보니 피구는 여전히 인기 종목이더라고요. 자율 체육을 하면 보통 피구를 한대요. 단순한 룰을 가진 게임 속에서 굉장히 많은 감정의 교환과 권력 싸움이 일어납니다. 그 안에 굉장히 치열한 아이들의 세계가 있다고 생각해서 피구를 사용했어요.



관객: 아이들 이야기를 쓰기 위해 어떤 조사를 했는지 궁금합니다.



윤: 처음엔 저의 자전적인 부분을 많이 가지고 왔어요. 원래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었는데 2년 동안 시나리오를 잡고 있으면서 제가 설정한 부분은 다 날아갔어요. 그렇다보니 제가 저를 믿을 수 없어서 인터넷으로 조사를 했어요. 초등학생들 가는 카페에 가입하고 채팅도 많이 했어요. 놀랍게도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네이버 지식인 같은 곳에 자신이 겪은 일을 질문으로 올리는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거의 A4 한 장 분량으로 상세하게 서술을 해놓은 경우도 여러 번 봤어요. 그 사건이 별일 아닌 것 같지만 이 친구들한테는 우주 같은 일이잖아요. 이런 것들을 보면서 2년을 보냈어요. 그리고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넣기도 했어요. 그렇다보니 이 시나리오는 저 혼자 썼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관객: 오랜만에 다시 <우리들>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전에는 안 보였는데 오늘 다시 보니 선이의 할아버지 이야기가 왜 들어갔는지 굉장히 궁금하더라고요. 



윤: 할아버지 이야기는 제가 한편으로 굉장히 부끄러워하는 서브플롯인데요, 원래는 더 많은 장면이 있는데 찍고서 뺀 이야기에요. 저는 선이와 지아가 함께 미워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만나고 반복하는 게 처음 겪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선이 아빠는 그 대상이 아버지였을 거고, 그에겐 이 관계가 평생의 숙제였을 거라고 생각해요. 미워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애매한 관계였을 거 같아요. 그래서 선이가 이런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고 그것에 대한 반영으로 무엇을 느끼길 바란 거 같아요. 누군가에 대한 미움을 풀지 못하고 계속 안고 간다는 것은 굉장히 괴로운 일이구나 알길 바란 것 같아요. 원래는 선이가 아버지의 괴로움을 보고 그와 다른 선택을 하기 위한 장치로 넣었어요. 그런데 뭔가 착 달라붙질 않아서 편집 때 뺐어요. 아쉬움이 남는 서브플롯이에요.





관객: 보라를 비롯한 세 명의 아이들에 대해 어떤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선이가 밤에 봉숭아를 혼자 바라보고 있는 장면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 장면을 어떻게 촬영했는지 궁금해요.



윤: 세 명의 아이들 다 사랑해요. 그렇지만 보라는...너무 나빠요.(웃음) 원래 이서연 배우가 엄청 착해요. 맏이처럼 계속 무언가를 챙겨요. 자기 손이 안 가면 안 되는 스타일이거든요. 연기를 너무 잘했어요. 어떻게 저런 눈빛으로, 저런 재수 없는 대사를 막 하는지.(웃음) 원래 시나리오 초고는 선이에게 집중된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지아의 서브플롯이 있어서 다른 캐릭터들의 삶을 보여줄 수 있는 장면들이 있었는데 탈고를 하면서 다 빠지고 선이의 이야기로 집중되는 과정이 있었어요. 그래서 스태프나 관객 분들로부터 “보라는 어떻게 할 건가요?” 같은 질문을 자주 받았어요. 관객 분 중에 한 분이 엔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보라에 대한 단죄를 요구한 적이 있어요. 그 때 제가 “사실 보라에게도 아픔이 있습니다”라고 변명처럼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선이와 보라의 모습이 둘 다 제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만들었고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성찰해서 새로운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근데 보라는 그런 부분이 표현이 잘 안 된 거 같아요. 부모님의 아주 경쟁적이고 이기적인 가치들을 내면화해서 살아온 아픔이 있는 아이인데 정작 이서현 배우한테 돌아오는 질문은 “악역을 한 소감은?” 같은 질문이었어요. 그래서 배우에게 미안함을 가지고 있어요. 만약 <우리들>에 대한 속편을 만들어야 한다면 보라외전을 만들 생각이 있어요.


그리고 저도 봉숭아 장면 굉장히 좋아해요. 최수인 배우가 너무 예쁘게 나와서 그런 것 같은데, 시나리오를 쓸 당시에는 좀 더 서늘한 장면이었어요. 선이의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지아와의 관계를 극복할 것인가를 골똘히 생각해보는, 그런 장면이 되어서 좋아합니다. 선이가 베란다 턱에 앉아 있잖아요. 그래서 아까 보면서는 아픈 곳에 오래앉아 있었구나 하는 생각, 모기가 너무 많았던 기억이 났어요.



관객: 저는 오늘 영화를 처음 봤어요. 선이가 돈을 가져다가 선물을 사는데 그 선물이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윤: 물어봐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사실 선물을 거절당하는 장면과 엄마한테 혼나는 장면 사이에 장면 하나가 있었는데 현장에서 바로 삭제를 했어요. 선이가 혼자 그걸 풀어보고 다시 닫는 장면이었습니다. 근데 엄마한테 혼나는 장면이랑 겹치는 것 같더라고요. 선물을 뭘 살까 연출부 회의를 통해서 굉장히 많은 이야기가 오갔어요. 되게 어렵게 결정을 했는데 사용을 안 했죠. 원래 선물은 헤드폰이었어요. 당시의 선이 생각으로는 비싼 것을 사주면 지아와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거죠. 지아는 항상 헤드폰을 쓰고 다니잖아요. 영국국기가 그려진 헤드폰이었어요. 나중에 보니 굳이 필요하지 않아서 빼게 되었어요.



관객: 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매니큐어가 소재로 나오는데 그 장면에서 <아무도 모른다>(2004)가 생각나더라고요. 레퍼런스한 영화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럼 언제 놀아”라는 대사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윤: <아무도 모른다>는 저의 인생영화이긴 하지만 이 영화를 만들 때 특별한 레퍼런스로 잡기는 힘들었어요. 왜냐하면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는 많고 특징도 전부 달라요. 카메라 워크도 다르고 표현하는 방식도 다르더라고요. 제 영화는 말이 엄청 많고 사건이 쌓여서 감정이 올라가는 영화이기 때문에 <아무도 모른다>를 레퍼런스로 삼긴 어려웠어요. 참고할 수 있는 영화는 다 참고했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다르덴 형제나 안드레아 아놀드의 영화를 많이 참고 한 것 같아요.


“그럼 언제 놀아”는 제가 이것저것 적어놓은 노트에서 가져왔어요. 제 지인 분을 통해서 실제로 들은 말이에요. 제 지인의 아이가 유치원에서 맨날 맞고 오기에 가서 그 친구를 때리고 했대요. 그래도 맨날 맞고 다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의기양양해서 집에 오더래요. 드디어 그 친구를 때린 거죠. 근데 “걔도 때렸어”라고 말하더래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라고 하니 “같이 놀았어”라고 대답한 거죠. 영화에서 나온 거랑 똑같이요. 그러면서 ‘왜 부모님은 자꾸 때리라고 하지? 같이 놀아야 되는데’ 식으로 되게 한심하게 쳐다보더래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가 20대 초반이었는데 당시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던 거 같아요. 그래서인지 되게 충격적으로 다가왔어요. 미움을 가지고 있는 게 용서하는 일보다 더 힘든 일이거든요. 그래서 어떤 순간에는 미움을 멈추고 내가 잘 놀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로 써놓은 거였는데 딱 윤이가 할 법한 대사겠구나 해서 넣었어요.



관객: 영화를 만들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윤: 최근에 드는 생각은 관객을 만나고 싶어서 만든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더 격렬할 수 있었던 이야기를 부드러운 터치로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살다보면 어린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미워하고 오해하는 과정에서 더 이상 회복될 수 없는 관계로 남는 사람들이 생기잖아요. 그런 과정을 계속 겪다보니까 외롭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런 이야기를 공유하고 함께 고민하고 싶어서 만든 거 같아요. 저는 당시에 선이처럼 행동하지 못했어요. 어떤 관계가 부서지면 회복하려고 했지만 그냥 그러다가 끝났어요. 그렇게 영영 회복할 수 없는 관계들을 많이 지나왔어요. 하지만 선이는 저랑 다른 사람이니까 현실에서 용기를 가져주길 바랐어요. 그리고 그런 선이를 보면서 제가 스스로 느끼는 게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이런 마음들과 결심들을 관객 분들과 나누고 제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서 만들었어요.



김: 감독님이 요새 제일 비중을 두고 있는 일은 뭔가요?



윤: 그동안 영화를 정말 하나도 안 봤어요. 이제 이 영화와 멀어지고 새로운 걸 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것 같아요. 지금 새 작품에 대한 초고는 나왔는데 이 길이 아닌 거 같아서 새롭게 고쳐보려고 하고 있어요. 사람이 이 정도 나이를 먹으면 바뀔 수 있는 게 아닌 거 같아요. 제가 가진 것 내에서 어떤 걸 재미있게 잘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김: 감독님의 새로운 이야기가 굉장히 기대됩니다.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오늘 관객 분들께 한마디 해주세요.



윤: 영화를 보는 거 자체가 하나의 일인데 이렇게 극장까지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꼭 좋은 영화 만들어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우리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들은 아이들이 멈춰서 어떤 움직임도 없이 카메라에 온전히 잡히는 순간들이다. 1년이 지난 지금, 선이와 지아는 딱 1년의 시간만큼 자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만큼 본인이 견뎌야 하는 1인분의 총량이 늘었을 것이다. 자신이 담을 수 있는 총량이 늘어난 만큼 동네는 작게 느껴질 것이고 그들이 느끼던 세계의 스케일은 1년만큼 작아졌을 것이다. 아이들이 멈춰서 어떤 움직임도 없이 카메라에 온전히 잡히는 순간들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보고 있을 대상이다. 대신 그들이 그것을 보고 있던 모습만이 담겨있다. 훗날 그들도 우리들처럼 그 대상을 궁금해 할 날이 오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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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밍 보이즈한줄 관람평


송희원 | 청년들 땀으로 꿈을 경작하다

이현재 | 세계를 돌고 돌아 얻은 단순한 답변. 단순하기는 어렵다.

이지윤 | 삶도 영화도 유기농

김은정 | 농사 때문만은 아니야





 <파밍 보이즈> 리뷰: 농사 때문만은 아니야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은정 님의 글입니다.



농사를 위해 뭉친 세 청년들은 해외에서는 어떻게 농사를 짓는지, 또 해외의 젊은 외국의 농부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몸소 체험하기 위해 배낭 하나 메고 무작정 여행길에 오른다. 그들은 농사일을 배우고 돕는 대신에 숙식을 제공받으며 장장 2년간의 여행을 마친다. 98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다큐멘터리 영화인 <파밍 보이즈>가 내내 관객을 붙잡은 비결을 생각해보았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만들었을 때 무척이나 흥미로운 주제를 가져간다. 무전여행이 바로 그것이다. 여행이라는 요소만으로 영화는 이국적인 풍경, 낯선 사람이라는 장치를 통해 우리들의 시선을 끈다. 여기서 ‘돈이 없다’는 상황이 더해지며 이야기는 보다 자극적으로 변화한다. 돈이 없는 여행객들이 마주할 수밖에 없는 난감한 상황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차를 타고 이동하기 위해 몇 시간씩 히치하이킹을 한다든지, 그 마저도 녹록치 않아 비오는 늦은 밤까지 무작정 걸어야 한다든지, 풀숲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한다든지. 이렇게 무전여행이라는 주제만으로 극적인 효과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마치 흥미진진한 어드벤처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또 다른 흥미로운 주제는 바로 이들이 여행하는 목적이다. 농사. 사실 무전여행이라는 테마 없이 단순히 농업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관객들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영화가 되었을 것 같다. 농사를 업으로 삼는 것에 관심 있는 한국 청년들이 별로 없듯이 농사 자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웰빙, 오가닉 푸드 등을 화두로 도시에서 자신만의 작은 뜰을 가진다거나 주말농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농업을 위해 무일푼으로 여행을 떠나는 세 청년이 주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우리는 갑자기 내용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영화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농사는 직업 그 이상이다. 삶이다.’ 그렇기에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더 와 닿는 것이 아닐까. 극영화와 달리 다큐멘터리는 편집, 그리고 경우에 따라 추가되는 내레이션과 배경음악 등을 제외하면 인물의 삶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렇기 때문에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서, 말하자면 진정한, 그리고 사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저 우리의 삶의 이야기인 것이다. 2년간의 여행을 마친 뒤, 그들은 모두 농사를 짓고 있을까? 아니다. 그렇지만 저마다 어떤 일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책을 쓰고 창업을 하고, 누군가는 취직을 하고, 또 누군가는 농사를 짓는다. 여행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의미가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닐까. 이후의 삶이 달라진 게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이라는 점. 처음에는 두렵고 설레던 무전여행이 이제는 우리가 지나온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는 것. 그렇게 여행은 우리에게 삶에서 놓쳐왔던 생기와 의지를 불어넣어주며 다음 도약으로의 기회를 심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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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스러지며 피어나는 꽃처럼 <재꽃>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7년 7 2일(일) 오후 1 상영 후

참석 박석영 감독 | 배우 정하담, 장해금

진행 이경미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지윤 님의 글입니다.




바람 부는 들가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던 <들꽃>(2014)은 많은 생채기를 안고 단단해지려는 <스틸 플라워>(2015)로 피어난다. 그리고 종국에 그 꽃은 무수히 많은 잿가루로 바스러져 공중에 흩날리며 만개한다. 일요일의 오후, ‘꽃 3부작’의 마지막 <재꽃>의 인디토크가 진행되었다. 작품을 연출한 박석영 감독과 정하담, 장해금 배우가 함께했다. <비밀은 없다>를 연출한 이경미 감독의 모더레이팅으로 인디토크가 시작되었다.





이경미 감독(이하 이): <재꽃>의 배우들은 쉴 새 없이 달리고 움직인다. 전작에서도 그랬고. 감독님의 인물들은 왜 그렇게 계속 뛰는 것인가?



박석영 감독(이하 박): 실제로 정하담 배우가 많이 뛴다. 예전에 <들꽃>으로 영화제에 간 적이 있다. 다른 분들과 술을 먹고 있는데 누군가 뛰는 소리가 들렸다. 봤더니 정하담 배우가 혼자 뛰고 있더라. 답답해서 뛰는 것인지, 기분이 나빠서 나간 것인지 생각을 하게 되지 않나. 그래서 왜 뛰는지 이유를 물어봤다. 뛰면 심장이 같이 뛰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좋아진다고 정하담 배우가 대답했다. 개인적으로 뛰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다.(웃음)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설정을 하게 된 것 같다. 다 길을 걷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눅눅해지는 느낌이 싫었고 도전하고 부딪히는 용감함이 좋았다. 누군가 잡아주기를 기다리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시작은 갑자기 뛰어다니기 시작하는 정하담 배우의 특징이었다.



이: 정하담 배우는 왜 뛰는가?



정하담 배우(이하 정): 어렸을 때부터 잘 뛰었다. 산책을 많이 나간다. 집 앞에 불광천이 있는데 거기에서도 계속 뛴다. 기숙사에 살 땐 친구들이 내가 오는 소리를 다 알아맞히곤 했다.



장해금 배우(이하 장): 촬영을 할 때 논길이 있었다. 정하담 배우가 촬영을 들어가기 전, 이어폰을 끼고 계속 그곳을 산책했다. 그래서 ‘언니 뭐해?’라고 물어봤는데 ‘그냥 산책해.’라고 대답을 하더라. 그래서 ‘언니는 진짜 뛰는 걸 좋아하고 산책하는 걸 좋아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했다.(웃음)



이: 감독님은 배우를 만나면서 인물을 만들어 가나?



박: 첫 영화가 <들꽃>인데 거기서도 정하담 배우와 함께했다. 비밀이 많은 거리의 소녀 역을 맡았다. 가출 청소년의 리얼리티를 찾아내는 것이 매우 어렵지 않나. 우리는 실제 아이들을 취재해서 작품을 만들었다. 하담 배우가 한 달 동안 허름한 옷을 입고 밤에 거리를 걸어 다녔다.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내가 그 뒤를 따라다녔다. 뛰어다니기도 하고 어딘가에 들어가기도 하고 편의점에 가서 무엇인가를 사기도 하더라. 이렇게 한 달 정도 스스로 해내고 난 후 카메라 앞에서 첫 촬영을 시작하는데, 그 안에 옷과 분장으로는 만들 수 없는 거리의 아이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내비게이션 정도고 그 길을 스스로 찾아나가는 것은 배우의 몫이다. <스틸 플라워>와 <재꽃>도 마찬가지였다. <재꽃> 촬영 때는 밤마다 작품에 등장하는 집에서 잤다. 집을 느끼고 편안해지기 위해서 정하담 배우, ‘철기’ 역의 김태희 배우와 같이 있었는데 밤마다 정하담 배우가 없어졌다. 뛰고 있겠구나 생각해서 밖에 나가면 그냥 뛰고만 있는 게 아니라 울고 있었다. 잘해놓고 도대체 왜 우냐고 물어보면 잘한 것 같지가 않다고, 거짓말을 한 것 같다고 답답해하더라. 본인은 그게 성에 차지 않았던 것 같다. 그것이 정말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했다. 모든 배우를 볼 때 그 기준으로 보게 되니까, 참 어렵다. 어쨌든 이 과정은 정하담 배우와 함께 만들었다기보다는 그녀가 찾아나가는 것이었다.





이: 정하담 배우는 박석영 감독과 세 작품을 같이 했다. 극 중 이름도 실제 이름과 같은 이름을 쓰면서 혼신을 불살라 연기했다.



정: 실제로 연기를 할 때, 하담이라는 인물이 나와 유사하다기보다는 기본적인 그릇이 나보다 조금 더 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스틸 플라워>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다. 나보다 훨씬 커다란 사람을 이해하고 닮아가려 연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같은 이름이긴 하지만, 다른 캐릭터로 느끼게 됐다. <들꽃> 때는 관객 분들이 ‘하담’이라고 이야기하면 꼭 나를 개인적으로 칭하는 것 같아서 혼란스럽기도 했다. 하담이라는 인물이 나와 다른 인물이라는 생각은 <스틸 플라워> 때부터 들었다. <스틸 플라워> 속 하담이라는 인물은 정직하고, 여리고, 강하지만 따뜻한 부분이 많다. 기본적으로 성격이 예쁜 사람이다. <재꽃>에서 그러한 인물의 크기와 사려 깊음, 훌륭함이 좀 더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촬영을 할 때 인물의 현재와 내가 이 인물에게 해주고 싶은 것, 그리고 하담이 ‘해별’이라는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 같은 것들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이: 장해금 배우는 정하담 배우에 대해 만나기 전부터 알고 있었나?



장: 오디션을 볼 때는 그냥 ‘나랑 같이 할 언니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정하담 배우를 검색해봤는데 그때까지는 얼마나 연기를 많이 했는지, 잘하는지를 몰랐다. 같이 <재꽃>을 찍으며 보니 감정이입을 하면 바로 눈물을 흘리더라. 후시 녹음을 할 때 정하담 배우가 갑자기 운 적이 있다. 왜 우는지를 물어보는 것은 실례일 것 같아 물어보지 않았지만 왠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굉장히 감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 두 배우와의 작업 방식이 조금 달랐을 것 같다. 어떻게 달랐는가?



박: 오디션 과정은 내가 느끼기에 비슷했다. 정하담 배우가 연기를 하지 않았을 때 <들꽃>의 오디션을 봤고 장해금 배우도 연기 경험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오디션을 봤다. 둘이 비슷한 지점이 있었다. 그 비슷한 지점을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정하담 배우의 오디션을 볼 때 거리의 아이라는 설정을 주고 눈물이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울지를 않았다. 연기를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해서 감히 배우의 연기 안으로 들어가 지나가는 아저씨처럼 ‘너 누구냐?’, ‘이름이 뭐냐?’ 등의 질문을 던졌다. 그랬는데 정하담 배우가 대답을 안 하고 보기만 하더라. 오디션을 마치고 같이 걸어 나오며 ‘도대체 왜 이름을 얘기 안했어요? 이름 정도는 얘기할 수 있잖아요?’라고 물었더니 상대가 부드럽게 말하기는 했지만 냉정하게 느껴져서 대답을 하면 위험해질 것 같았다고 말하더라. 보통 오디션에서 이름을 말하라고 그러면 뭐라도 할 것 아닌가. 그게 이해가 안 돼서 많은 선배님들한테 물어봤다. 그 때 들었던 말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건 ‘그 아이는 음색을 듣는다.’는 말이었다. 보통 표현력에 있어서 건반이 많은 사람들, 자기 소리를 잘 내는 사람들을 좋은 연기자 내지는 좋은 아티스트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배우에게 듣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진실에 가까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정하담 배우는 듣는 건반이 매우 넓다. 그리고 들은 소리로 자신의 윤리적인 판단을 해서 연기를 한다. 그래서 기계적이지 않은 다른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3년이 지나고 장해금 배우의 오디션을 볼 때 ‘200m 앞에 아버지의 집이 있다.’라 말을 하고 캐리어를 들게 했다. 이미지를 보고 싶었다. 장해금 배우가 가다가 중간에 서더라. 그러더니 옆에 있는 풀밭을 한참 보다가 또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왜 그랬냐고 물어봤다. 거기에 꽃이 있었던 모양이다. ‘꽃이 예쁘잖아요.’라고 답하더라.


얼굴의 유사성은 나중에 느꼈다. 처음에 두 배우가 닮았다는 말을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유사성이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장면은 탭댄스 신발을 신겨주는 매우 긴 장면이다. ‘제발 조금만 빨리 신겨주면 안될까?’하는 마음이 감독으로서 있지 않겠나.(웃음) 한 쪽만 신겨주고 넘어가야하는데 두 쪽을 다 신겨주고 있고. 그 다음에 장해금 배우가 다시 앉아서 보더니 자신의 신발을 내주더라. 디렉션에는 없었던 장면이다. 나중에 장해금 배우에게 물어봤더니 정하담 배우가 맨발로 있으면 아플 것 같아서 신발을 내주었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과 영화를 하면 ‘나의 카메라는 도대체 뭘 원해서 이 자리에 있는가?’를 본질적으로 계속 질문할 수밖에 없다. 많이 배워가는 과정이었다.





이: 영화를 보다보면 실제로 두 배우가 굉장히 친밀하고 가까울 것 같다는 느낌이 저절로 든다. 정하담 배우는 장해금 배우와 작업을 할 때 어땠는가?



정: 처음에 캐스팅이 정해졌을 때 굉장히 보고 싶었다. 만나서 얘기를 해보니 정말 재미있었다. 캐릭터의 관계가 언니동생 사이이긴 하지만 이 친구에게 하담이 완전히 어른으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른처럼 대하면 캐릭터가 훼손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언니는’이라는 말을 안 하려고 했다. 실제로 장해금 배우가 밝고 똘망똘망 예뻐서 영화에서처럼 하담이 해금을 좋아하는 게 쉬웠다. 정말 예쁜 친구다.



이: 장해금 배우는 어땠나?



장: 제일 친했던 사람이 정하담 배우였다. 같이 놀고, 쉬는 시간에도 정하담 배우와 같이 있었다. 정말 잘해주고 연기도 잘해서 좋았다.



관객: 하담이 독백을 하는 장면이 있다. 감독에게도, 배우에게도 중요한 장면이었을 것이다. 감독님이 디렉션을 어떻게 줬는지, 그리고 배우님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연기를 했는지 궁금하다.



정: 사실 독백은 <들꽃> 때 오디션을 본 대본이다. 어렸을 때 버려진 하담이라는 인물의 전사다. 그 대사를 오래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하담이라는 인물이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스틸 플라워>를 찍을 때도 그런 생각을 했다. <재꽃> 때 그 대사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은 해별이 가고 난 후 든 큰 죄책감 때문이다. 본인이 조작한 서류, 그리고 ‘명호’가 그것을 알아챘을지 아니면 믿고 있을지 불안하지 않나. 그런데 명호가 해별을 그렇게 데려갔을 때 너무 큰 죄책감이 든 거다. 그래서 그때 처음 얘기해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혼자 독백을 했다. 하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미안하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 같다.



박: 독백은 하담의 전사고 거의 비슷하게 오디션을 봤다. 사실 대사가 뒤에 더 길다. ‘혼자서 걸어갔는데 검고 어두운 사람들이 계속 옆을 지나가고 있었어. 계속 걸었어. 난 무서웠는데 그러다 길에서 쓰러졌나봐. 그리고 여기야.’ 이런 식의 대사였다. 원래는 엄마를 기다리다 3일을 보내고 혼자 걸어가다가 어딘가에 쓰러진 것이었다. 그 다음에 고아원이나 시설에 있다가 다시 나오게 된 거라고 생각했다. 전사를 맞닥뜨리게 되는 순간, 이미 많은 판단을 내려서 보게 되고 그 이야기만으로 캐릭터를 이해하게 되지 않나. 그래서 그 전 영화들에서는 2시간 안에 캐릭터의 뒷이야기로 이해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독백을 한 것은 그게 자기연민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죄책감이나 미안함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해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어떤 사람에 대해 느끼는 스스로의 감정 때문에 나의 정체를 다시 꺼내볼 수 있는 순간들이 있지 않나. 독백 장면을 연기하는 걸 앞에서 보며 나뿐만 아니라 함께했던 스태프들도 굉장히 어려웠다.





<재꽃>은 마지막으로 보이는 순간, 바스러진 행복의 잔재에 절망하지 않고 그 끝을 꽃잎 삼아 피어난다. 그리고 손을 꼭 맞잡은 채 마을을 떠난 하담과 해별 또한 바스러지며 피어나는 재꽃처럼 아름답게 만개할 것이다. 상처와 통증을 안고 피어났기에 그 꽃은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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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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