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마주한 시간  인디돌잔치 <할머니의 먼 집>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7년 9월 26일(화)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이소현 감독

진행 정지혜 영화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가영 님의 글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이별의 순간을 맞이 할 수밖에 없다. 누구나 변하지 않는 영원을 꿈꾸지만 그런 건 없다. 죽음은 우리의 운명이다. 하지만 죽음이 절대적인 법칙임을 알면서도 매번 그 실체를 목도하기란 두렵고 무섭다. <할머니의 먼 집>은 죽음과 맞닿아 있는 인간의 외로움과 고뇌에 주목한다. 이 영화는 우리들로 하여금 죽음과 동시에 과거가 되어버릴 순간을 어떤 자세로 보내야 하는지 고민하게 한다. 평일 늦은 저녁, <할머니의 먼 집>이 개봉 1년만에 다시 한 번 상영의 기회를 가졌다. 마지막 GV가 아쉬워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는 감독과 모더레이터, 그리고 관객들의 모습이 좋았다.





정지혜 영화저널리스트(이하 정): 이번 인디돌잔치는 <할머니의 먼 집>이 선정됐습니다. 할머니에 대한 영화이다 보니 누구나 공감하며 봤을 것 같아요. 감독님은 오랜만에 관객 분들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그 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이소현 감독(이하 이): 영화 개봉을 마무리하고 나서는 진이 빠져서 좀 쉬었어요. 요즘은 건강이 안 좋아져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책도 읽고 음악도 들으면서 지냅니다.



정: 인터뷰에서 나중에 할머니를 보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답변하신 기억이 나요. 올해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도 해서 영화를 다시 보는 마음이 마냥 편치만은 않을 것 같아요.



이: 편집을 하며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개봉한 이후에는 딱 한 번 밖에 보지 않았어요. 어떤 감독님들은 매 GV마다 본다고 하는데, 저는 힘들더라고요.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인데도 그랬어요.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 엄마의 요청으로 장례식장에서 영화를 계속 틀어놨었어요.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제대로 본 건 얼마 전 KBS 독립영화관에서 방영했을 때예요. 방금 진행자 분께서 말씀하셨듯이 나중에 할머니를 기억하고 싶을 때 보기 위해 영화를 만든 건데, 진짜 그 이유로 이렇게 영화를 다시 보게 되는 구나 생각이 들어서 많이 울었어요. 과거 인터뷰 당시에는 답변을 하면서도 이런 순간이 정말로 올 거라고 생각을 못했거든요. 할머니께서 돌아가셨고,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봤습니다.



정: 영화의 시작 부분에도 나오지만, 감독님이 해외에 있을 때 할머니의 자살시도 소식을 듣고 돌아와 할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셨죠. 카메라를 들고 할머니의 모습을 촬영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이: 할머니 화장대에 제가 어렸을 때 할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이 많았어요. 하지만 대학 진학 후 같이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더라고요. 지금부터라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엔 단순히 휴대전화 카메라로 시작했어요. 그러다 요즘에는 동영상 기능이 다 있으니 할머니의 표정이나 행동, 모든 것을 영상으로 그대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욕심이 생겨 ‘우리 할머니의 일상을 단편영화로 만들어서 전주국제영화제에 출품해볼까’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만약 내가 만든 영화가 영화제에서 상영된다면, 할머니의 삶의 아름다움을 많은 관객 분들이 보고 박수를 치고 할머니께서 그 모습을 보신다면, 할머니가 다시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짧은 다큐멘터리를 계획하고 한 달 동안 촬영했고 그 후 어떻게 영화로 만들어야 할지 막막해서 편집도 안 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외숙께서 사고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고 사촌 오빠가 외숙 49제 마지막 날 아버지 가시는 길을 영상을 남기고 싶다며 저에게 촬영을 부탁했어요. 이걸 계기로 3년동안 촬영하게 되었습니다.



정: 전주국제영화제에 출품했다가 잘 안 돼서 할머니와 단 둘이 조촐하게 집에서 상영회를 열었다면서요.



이: 네, 그렇습니다.(웃음) 프로젝터를 빌려 할머니 집 마당에서 상영회를 열었습니다. 그 이후 바로 이 극장(인디스페이스)에서 서울독립영화제를 통해 상영의 기회를 가졌어요. 할머니와 GV도 진행했습니다.



정: 극장에서 영화를 처음 보셨을 때 할머니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나요?



이: 할머니께 처음으로 상영 소식을 말씀 드렸을 땐 믿지 않으셨어요. “뭐 하러 서울 사람들이 나를 본다고 하더냐”라면서 안 오려고 하셨어요. 결국 친척들이 봉고차를 대절해서 다 같이 인디스페이스에 왔어요. 극장 안에 많은 관객 분들이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아이고 우리 손주 말이 참말이었네” 하면서 되게 좋아하셨고 기뻐하셨어요.



정: 영화를 보고 한편으로 나이 듦이 뭘까 고민했어요. 죽음을 준비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한 고민을 다들 가지고 있을 텐데, 할머니의 곁에서 누구보다 시간을 많이 보낸 감독님 또한 죽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아요.

 


이: 사실 영화를 완성할 때까지도 할머니를 많이 사랑하니까 더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마음 속에서 버리지 못했어요. 올해 3월에 돌아가셨는데, 제가 영화 작업을 마치고 1-2월에 화순에 내려가서 할머니를 돌봐드렸거든요. 당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정도로 많이 아프셨는데 제가 그 불편함을 대신 처리하고 해결할 때마다 너무 서러워하셨어요. 이때까지 손주들을 돌보고 키워왔는데 이제는 자신이 보살핌을 받는 존재라는 생각 때문이었나봐요.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고 베푸는 것이 할머니의 존엄성을 지켜왔던 부분인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다는 사실에 마음 아파하셨어요.



정: 영화가 개인 혹은 개인 가족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다수에게 이야기 거리를 던져줄 수 있는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촬영에 임하는 감독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논쟁적인 가족의 모습을 더 보여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요양병원에 할머니를 모실 것인가, 영양제를 계속 할머니께 드리는 게 맞나 같은 문제들이 가족 내에서 얼마든지 더 이야기 될 수 있었을 텐데 감독님이 다 거둬낸 건가 의문이 들더라고요. 어떤 자세로 영화작업에 임했나요?



이: 두 가지로 답할 수 있는데, 가족들은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하는 취업준비생 ‘나’의 존재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때문에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솔직한 모습을 담을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어요. 일부러 빼려고 했던 장면은 외숙께서 돌아가셨을 때 할머니가 식음을 전폐하고 거의 일주일 동안을 울기만 한 모습이에요. 죽음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정이 전달이 되기 때문에 굳이 다 드러내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어요. 덧붙여 말씀 드리면 1차로 어머니께 보여드렸을 때 본인의 말이 의도와 다르게 보이는 부분이나 혹은 왜곡돼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부분은 의견대로 편집했어요. 예쁘게 나온 장면이나 대안이 될 수 있는 컷들도 함께 조율하면서 찾았습니다.(웃음)





관객: 영화 제목에 대해 여쭤보고 싶어요. ‘할머니의 먼 집’이 단순히 물리적인 뜻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떤 의도로 제목을 지었나요?



이: 처음에는 여름 한 달 동안만 촬영을 계획했어요. 그래서 ‘여름과 외할머니’라는 제목을 지어놨었고요. 하지만 촬영 기간이 길어졌고 4계절의 모습이 모두 담기면서 제목을 바꿔야 하는 순간이 왔어요. 그렇게 고민하던 와중에 한 때 시인을 꿈꾸던 국문과 출신의 친구가 제 옆에 앉아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이거 내일까지 출품해야 하는데 당장 제목 좀 지어봐” 요청을 했고, 친구가 <할머니의 먼 집>이라고 지어줬어요. 집 자체가 할머니의 삶의 공간이면서 모든 삶을 다 보여주고 있잖아요. 이장하는 장면에서 어르신들이 묘를 지칭하며 이제 여기가 할머니의 집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친구는 여기서 공감을 했대요. 할머니가 삶이라는 집에서 죽음이라는 집으로 가는 긴 여정 중 한 부분을 네가 영화로 기록하는 거니까 <할머니의 먼 집>이라고 제목 지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정: 감독님이 출연도 하고 내레이션까지 도맡았어요. 영화에서 우는 모습까지 다 나오고요. 편집과정에서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이: 편집감독님과 서로 주고 받는 형식으로 편집을 진행했어요. 14차까지 했는데, 제 편집본에는 제가 거의 등장하지 않아요. 우는 장면도 당연히 없었고요. 근데 편집감독님의 편집본에서는 제가 너무 많이 등장하는 거예요. 사적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입장에서 스스로 등장한다는 점이 꺼려졌어요. 실제로도 우는 장면을 가지고 가장 많이 논의했는데, 편집감독님은 진심이 많이 드러나서 좋다고 말씀하셨어요. 서울독립영화제 상영 이후 관객 분들의 반응이 좋아서 결국은 넣게 되었습니다.



정: 예전에 쓴 일기가 영화 내러티브에서 이음새 역할을 해요. 지금 상황과 딱 맞는 일기를 보면서 신기했는데, 어렸을 적 일기를 어떻게 이 영화에 가져오게 됐나요?



이: 단순히 할머니와 저의 어린 시절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 재현 다큐멘터리로는 어울리지 않았어요. 마침 제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선생님께 일기 검사를 강제로 받아야 해서 일기를 빼놓지 않고 썼어요. 제 생애 집필활동을 가장 열심히 한 시기예요.(웃음) 일기장 속에 이야기 거리가 많았고 할머니 손에 자라서 할머니 이야기가 굉장히 많았어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상들이 일기장에 그대로 있더라고요.



관객: 처음에 할머니가 술을 권했을 땐 잘 안 마시더니 나중에는 건배도 하고 술자리도 같이 하더라고요. 그렇게 변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이: 개인적으로 술을 좋아하지는 않아요. 할머니가 마을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할머니에게 술친구가 필요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할머니는 손주에게 맛있는 걸 권하고 서로 나누는 것이 행복이었던 거죠. 



정:머니께서 계속해서 “죽어야지” 하면서도 젊음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그 감정이 부러움이라기 보단 회한에 젖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순간들을 회상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할머니에게 젊음이란 어떤 의미였을까요?



이: 할머니는 너무 부지런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을 행복이라 여겼어요. 나눔을 더 많이 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건강과 젊음이 필요한데, 지금은 그걸 잃어서 손녀에게도 못해준다는 현실에 많이 속상해 했어요. 



정: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할 텐데, 다른 방식으로도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감독님에게 화두가 될 수 있을까요?



이: 이제 가족물은 안 찍으려고요.(웃음) 처음 찍은 영화에 많은 운이 따른 것 같아요. 이제는 가족들이 카메라를 의식하기 시작했어요. 우리 가족들은 오염 됐구나 생각이 들어요.(웃음) 절실하게 찍고 싶은 이야기가 생긴다면 그때 다시 촬영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정: 감독님이 NGO활동을 오랫동안 했고 관심도 많다고 들었어요. 예전 인터뷰에서 분쟁지역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혹시 그와 관련된 주제가 있나요?

 


이: 건강이 좋아지면 12월에 팔레스타인 지역에 갈 계획이 있어요. 예전에 우연히 중동지역을 갔을 때 만난 관광객이 “이스라엘의 한 올리브 동산에 가면 한 할아버지가 있는데, 이분이 사람들을 먹여주고 재워주니 차비만 있다면 팔레스타인 지역에도 들어갈 수 있고 이스라엘 지역도 관광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셨어요. 그걸 듣고 바로 이스라엘에 갔고 모든 올리브 동산을 찾아서 결국엔 할아버지를 만났어요.(웃음) 그곳에서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그 분이 게스트하우스를 무료로 운영하는 이유는 그곳에 일반 관광객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인권 활동가, 국제 변호사 등 많은 분들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겉으로는 게스트하우스로 보이지만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의 근거지로 쓰이는 셈이죠.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자료조사 차원으로 갈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 일년 만에 다시 본 영화고 마지막 GV인데요, 어떻게 <할머니의 먼 집>을 간략하게 줄여서 마음속에 간직할 건가요?



이: 할머니를 기억하기 위해 만든 영화이니 할머니 기일 때마다 한 번씩 볼 예정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잊을 수 없다. 그저 마음껏 슬퍼하고 수만 가지 느낌을 겪어내는 수밖에. 우리의 기억 한 켠에 옮겨 두어 그리울 적이면 언제든 꺼내 회상할 수 있다는 그 사실로 위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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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엄혹할 것 같은 그곳에도 경쾌한 스텝이 있다  <땐뽀걸즈>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7년 10월 10일(화)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이승문 감독

진행 이현주 감독 (<연애담> 연출)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범수 님의 글입니다.



‘존재 그 자체로 빛나는 시절’이라는 수사가 아깝지 않을 만큼 <땐뽀걸즈>의 ‘땐뽀반’ 고등학생들은 시종일관 활력 넘치는 에너지를 스크린 가득 채웠다. 삶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좋아하는 춤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영화만큼이나 아름답고 유쾌했던 <땐뽀걸즈> 인디토크에 이승문 감독과 <연애담>의 이현주 감독이 함께했다. 





이현주 감독(이하 진행): 다른 영화를 만들려다가 <땐뽀걸즈>를 만들었다고 들었어요. 원래 어떤 영화를 준비했는지, 어떤 점에 매료되어서 이 영화를 만들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이승문 감독(이하 이): 저는 ‘KBS 스페셜’이라는 역사와 전통을 가진 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는 마음가짐으로 작년 6월에 그 팀에 들어갔어요. 그때 한국의 기간산업인 조선업, 애국가가 나올 때 배경으로도 나오는 그 산업이 붕괴하고 있고, 거제가 유령도시가 되어간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래서 ‘유령도시? 재미있을 것 같다! 저기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한 도시가 끝나간다는 말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거제라는 도시를 기록해 보고 싶었어요. 도시가 어떻게 쇠락해가는지, 그 안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했습니다. 답사를 가서 조선소에서 일하는 분들을 뵙고 그 분들의 삶을 진솔하게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제 깜냥으로는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인 ‘이 도시를 보라’는 이야기를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와중에 거제 관광지도를 우연히 보게 되었고, 거제여자상업고등학교의 귀여운 학교 마크를 발견했어요. 요새는 ‘여상’이라는 표현을 잘 안 쓴다고 들었는데, 아무튼 여상 졸업생들에 대한 궁금증이 들더라고요. 학교에 연락을 해서 졸업생들의 진로를 물어보니 대부분이 조선소 경리로 취직한다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이 친구들을 한 번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으로 학교를 찾아갔어요. 학교 명물을 소개시켜 주겠다는 말을 듣고 가봤는데 정말 신기한 광경을 봤어요. 밖이 다 논이라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음악을 틀자마자 눈빛이 싹 바뀌는 아이들이 거기에 있었어요. 그러다 밤 9시쯤 됐을 때 선생님 한 분이 천 원짜리 다발을 가지고 와서 아이들에게 한 장씩 나눠주더라고요.(웃음) 이 공간과 이 아이들을 좀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영화를 시작했습니다.



진행: 저도 예전에 다큐멘터리를 한 번 작업해 보려다가 도저히 못 만들 것 같아서 포기한 적이 있어요. 제 앞의 주인공이 나를 믿고 너무 내밀한 이야기들을 하는데, 이 내용을 공개해도 될 지, 무서움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이 고민을 저에게 영화를 가르쳐준 분에게 털어놨더니 카메라에 담기는 인물을 사랑하면 된다는 답변을 해줬어요. 감독님도 <땐뽀걸즈>를 만들면서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솔직히 말씀 드리면 이 영화에서 보여준 것보다 훨씬 내밀한 것을 찍으려고 했었어요. 그런 욕심들이 안 생길 수 없었는데, 제가 할 수 있는 건 저와 영화 속 친구들이 맺은 관계와 신뢰의 선 안에서만 (그들을) 표현하는 것이더라고요. 예를 들면 혜영이가 동생들 줄 빵을 사 들고 가는 장면을 찍을 때 저는 혜영이 집에 들어가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걸 혜영이가 되게 껄끄러워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이유를 들어봤는데 충분히 납득이 될 만한 내용이었어요. 혜영이와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장면들도 어떤 부분까지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찍은 것 같습니다.



진행: 선생님과 아이들의 관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사투리와 반말을 섞어 쓰는 대화가 서로를 평등하게 존중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감독님의 태도가 영화 속 선생님의 태도와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연출로 강조해서 감정을 끌어내는 대신 적당한 거리를 둠으로써 대상화의 문제를 피해간다는 인상이 들었는데요, 그 거리를 유지하면서 인물들과 어떻게 가까워졌는지 궁금합니다.



이: 저나 촬영감독이나 사람 많은 곳에서 앞장서 이끄는 역할을 잘 하는 편이 아니에요. 그래서 처음에 이 작업을 시작했을 때도 한 달간 무작정 찍기만 했어요. 선생님과 친구들이 ‘뭘 찍는 지 모르겠다. 필요한 것 있으면 말을 해라.’라고 할 정도로 답답해했어요.(웃음) 그런데 계속 그렇게 지내다 보니 친구들이 먼저 다가오더라고요. 누군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 굉장히 목말라있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두 달 정도 됐을 때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어줬고 그 이후로는 작업을 수월하게 할 수 있었어요.





관객: 시영이 아버지가 서울에서 생활하는 장면이 영화에 담겨 있는데, 처음부터 부녀관계를 중점적으로 다루며 작업을 한 건지 궁금합니다.



이: 영화에 등장한 여덟 명과 각각 친한 정도가 다른데, 그 중에서 가장 친해지기 어려웠던 친구가 시영이었습니다. 시영이가 단장이니까 선생님과 시영이를 중심으로 찍는 게 편해서 많이 찍긴 했지만요. 어려운 이유를 한참 고민했는데, 친구들의 가족 이야기를 우연치 않게 듣게 되었습니다. 희망퇴직을 한 시영이 아버지가 대회 당일에 서울로 올라가서 창업 관련 교육을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시영이 가족의 이야기를 담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아버님의 동의를 구했는데 흔쾌히 허락해 주셨습니다. 본인이 서울에 올라가 있는 동안 딸 곁에 누군가가 있어주는 것도 좋고, 덕분에 자신도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영이와 아버지의 이야기가 있어서 영화의 전체적인 무게감이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관객: 포스터에 끌려서 아무 정보도 없이 영화를 보게 되었어요. 포스터에 얽힌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이: 일단 포스터를 촬영하게 될 줄 몰랐어요. 포스터를 담당한 작가 분이 친구들을 한여름 땡볕 아래 해수욕장에 세워놓고 이런저런 춤 동작을 시켜서 찍었습니다. 친구들이 협조를 안 할 거라고 말했는데,(웃음) 의외로 촬영이 즐겁게 잘 끝났습니다. 결과물도 마음에 듭니다.



관객: 친구들의 공연이 카메라에 잘 안 잡힙니다. 춤을 어떻게 줬는지, 무대를 어떻게 완성했는지 궁금한데, 친구들의 무대를 볼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춤 장면을 굳이 영화에 넣지 않은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GV 때마다 이 질문을 받는데, 제가 뭔가 잘못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웃음) 이유부터 말씀을 드리면, 이 영화가 미션을 완성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대의 완성과 그 결과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게 핵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에게 춤이라는 게 그렇거든요. 대회에서 상을 받는 건 기쁨의 비명을 지를 만큼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그 목표만을 위해서 달려왔다고 하기에는 애매하니까요. 제가 찍고 싶었던 것은 친구들의 가장 빛나는 지금 이 순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무희처럼 조명 밑에 있는 모습뿐만 아니라 무대 바깥의 모습을 한 번 더 각인시킬 수 있도록 찍었어요. 별개로 대회 촬영본을 편집한 버전이 있긴 한데, 어떤 방식으로든 공개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진행: 선생님이 댄스 스포츠를 시작한 계기가 있나요?



이: 선생님이 체육 담당이고 잡기에 능해요. 처음에 선택한 건 줄넘기였는데, 본인이 힘들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뒀다고 해요.(웃음) 그러다가 댄스 스포츠를 우연히 보고 늙어서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서 배워왔대요. 그 때 선생님은 남자 공업고등학교에 있었고 댄스 스포츠를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복도에서 벌을 서고 있는 친구들을 본 거죠. 저 아이들을 데리고 시작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그들을 모아놓고 당구 내기를 해서 이기는 사람 소원을 들어주자고 했대요. 4대 1로 당구를 쳐서 이긴 다음 바로 댄스 스포츠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헌신적인 선생님과 열정 가득한 학생들이 함께 만들어 나간 ‘땐뽀반’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땐뽀걸즈>의 주인공들은 머지 않아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 각자의 삶을 꾸려나갈 것이다. 조선업으로 부흥했던 거제에 칼바람이 불어 닥쳤듯이 삶은 때때로 그들을 배신할 것이다. 그러나 열정 하나만으로도 가장 밝게 빛날 수 있었던 추억의 한 자락이, 앞으로 그들이 걸어나갈 길을 끝까지 비춰 주지 않을까. 그 소중한 기억들이 거제에 오래도록 남아 이어졌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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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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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라는 의미에 대한 잔잔한 파장  <분장>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7년 9월 30일(토) 오후 1시 상영 후

참석 남연우 감독 | 오도이 음악감독 | 배우 안성민, 홍정호, 한명수

진행 장성란 매거진M 기자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대한 님의 글입니다. (사진: 김은혜 님)



‘이해’라는 의미에 대해서 진솔한 시점으로 다룬 영화 <분장>. 남연우 감독은 관객들에게 이해에 대해서 의문을 제시한다. 남연우 감독, 안성민 배우, 홍정호 배우, 한명수 배우, 오도이 음악감독이 <분장> 인디토크에 함께 했다.





장성란 매거진M 기자(이하 진행): 남연우 감독은 2012년 <가시꽃>이라는 영화를 통해 주목을 받은 배우에요. 오늘 인디토크를 진행하기 전에 남연우 감독님의 인터뷰 기사를 몇 개 읽고 왔는데요, <분장>은 배우이자 한 인간으로서 겪는 고민들을 시나리오로 쓰고 연출한 영화라고 합니다. 또한 배우로의 고민을 다른 배우와 함께 나누면서 작업하고 싶어서 직접 연출에 도전했다고 해요. 그래서 감독님 외에 다른 배우 분들도 궁금해졌어요. 어떤 매력과 개성을 갖춘 배우 분들인지 감독님께 직접 듣고 싶습니다.



남연우 감독(이하 남연우): 안성민 배우는 제가 연기 학원에 강사로 있을 때 연이 닿았어요. 원래 무용을 전공하다가 연기가 하고 싶어서 연기 학원에 왔고, 입시를 준비할 때 워낙 성실하게 임해줬기에 같이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분장>의 시나리오가 나왔을 때, 동생 역이 무용을 잘하는 설정이었기때문에 제일 먼저 안성민 배우가 떠올랐습니다.


한명수 배우는 <가시꽃>을 촬영할 때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붐 마이크를 들고 있었어요. 배우가 카메라 앞이 아니라 뒤에서 붐을 들고 서있는 그 심정이 얼마나 괴로울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근데 짜증 한번 안 내고 누구보다 더 밝게 임하는 모습이 기억 속에 깊게 박혔어요. 같이 숙소에 있을 때 힘들지 않냐고 물어봤거든요. 그 때 ‘잘하는 형들과 함께 해서 기분이 좋다’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그 때 너무 큰 감동을 받았고, 연출을 하게 되면 같이 호흡을 맞추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훌륭하게 우재 역을 잘 소화해줬다고 생각합니다.


홍정호 배우는 저와 17년 째 인연이 있는 친구에요. <가시꽃>에서도 같이 호흡을 맞췄고 작업할 때 마다 제가 배우는 게 너무 많았어요. 그리고 ‘이나’라는 캐릭터가 기존의 홍정호 배우 몸무게에서 10kg정도 빼야하는 상황이었는데, 짧은 기간 동안 체중을 조절하더라고요. 한 배역을 소화하기 위해서 체중을 조절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보여준 프로 의식에 대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도이 음악감독도 17년 째 인연이 있는 동생이에요. 영화를 볼 때마다 영화와 영화음악에 대한 생각을 많이 나눴고 일치하는 부분도 많았어요. <분장>의 초기 시나리오 단계에서 잘 풀리지 않을 때 함께 리딩을 하면서 대사를 만들어 가기도 했습니다. 최종적으로 <분장>의 음악적인 부분들을 훌륭하게 완성시켜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도이 음악감독은 현재 ‘소울 스테이지’라는 그룹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진행: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 ‘송준’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은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궁금증이 들었어요. 특히 송준이 연극 ‘다크라이프’의 ‘주디’역을 연기하는 단계마다 ‘송혁’(안성민 분)과 ‘우재’(한명수 분)의 심리가 계속 요동쳤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 어떤 고민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안성민 배우(이하 안성민): 그 캐릭터를 연기하려면 일관된 면이 있어야 했는데, 그걸 잡는 게 쉽지가 않았어요. 그때마다 감독님과 대화를 나누고 고민하면서 방향을 잡아갔습니다. 



한명수 배우(이하 한명수): 비밀을 이야기하려다 말하지 못했을 경우, 그 비밀을 이야기하기가 점점 힘들어 지는 것 같아요. 우재는 마음속 짐이 컸을 거라고 생각해요. 우재는 송준의 옆에서 도움을 주고 주디가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죠. 송준한테는 비밀을 털어 놓을 수 있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연기했습니다.





진행: 이나가 음악으로 인물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장면이 많아요. 



홍정호 배우(이하 홍정호): 음악감독님한테 정말 많이 혼났어요.(웃음) 제가 원래 노래 부를 때 목소리가 조금 거칠어서 기존 설정으로 잡은 이나의 목소리 톤하고 너무 다르더라고요.(웃음)



오도이 음악감독(이하 오도이): 처음 음악을 만들고 제가 가이드를 잡았을 때는 생각처럼 잘 됐는데, 홍정호 배우가 부르니 좀 다르더라고요. 목소리가 너무 거칠었어요. 그래서 톤 변화를 위한 연습을 진짜 많이 했습니다. 배우님이 열심히 노력을 했고, 잘 해내서 너무 뿌듯합니다.



홍정호: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2번 있습니다. 마지막에 부른 ‘얼굴’이라는 곡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곡이었어요. 원래 눈물을 흘리는 설정은 없었는데, 그 곡을 부를 때는 정말 감정적으로 자연스럽게 눈물이 흘러나오더라고요.



진행: 이나가 부르는 노래는 성소수자들을 대변하는 목소리 같았어요. 작사 및 작곡을 할 때 그러한 점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아요.



오도이: 성소수자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정말 많이 봤어요. 감독님과 이야기도 많이 나눴고 저 나름대로 답을 내리려고 노력했어요. 



진행: 저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끝난 다음에야 비로소 관객들의 마음에서 ‘이해’라는 의미에 대해 의문이 일어난다고 생각하거든요. 특히 배우는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서 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보통의 사람들보다 더 많이 더 다가가려고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이 영화가 던진 ‘이해’라는 의미에 대한 답을 찾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한명수: <분장>을 찍고 나서 '이해'라는 말을 정말 조심스럽게 사용하게 됐어요. 타인을 이해한다고 말할 때는 조금 더 많은 생각을 하고 건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관객: 감독님께서 <분장>을 한 단어로 표현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추후 작품 계획이 궁금해요.



남연우: 저는 ‘낯설다’가 적절할 것 같아요. 영화 전체적인 이야기를 봐도 그렇고, 개봉을 해보니 저예산 영화가 노출이 되는 게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찾아주시는 것 또한 굉장히 낯선 걸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저희 제작사에서 다음 작품 시나리오를 썼어요. 정말 감사하게도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프로젝트마켓(APM) 지원작으로 선정되어 투자를 받기위해 갑니다. <내 나이 열네 살>이라는 작품이고 억울하게 누명을 쓴 14살 소년을 위로해주는 이야기입니다.



관객: 영화가 끝난 후에 각 인물들이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합니다.



남연우: 각자 생각해보셨을 것 같은데, 그게 정답인 것 같아요. 이건 또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들어주세요. 송준은 그 이후에도 자신의 위선에 대해서 인정하지 못 했을 것 같아요. 위선을 인정하는 순간 살아온 세월들이 더 힘들어질 것 같다는 생각에 말이죠. ‘다크라이프’가 잘 되었고 배우로서도 인정을 받으면서 계속 배우 생활을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긴 세월을 살다가 조금 나이가 들어서 위선을 인정하게 되는 순간이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성민: 요즘에도 계속 떠올리는데, 인물의 미래에 대한 생각이 계속 바뀌고 있어요. 촬영 때는 이후에 자살을 할 것 같다는 마음으로 연기를 했어요. 지금은 송혁이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확신을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한명수: 우재는 송준을 정말 믿었기에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배신당했고 그 충격으로 인해 송준을 다시 보지 못할 것 같아요. 송혁도 우재로부터 떠날 것이라고 생각했고요. 상처 받은 마음으로 지내다가 이나로부터 치유 받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홍정호: 이나는 영화에서 굉장히 강단 있는 캐릭터에요. 하지만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못하죠. 그런 와중에 송준을 받아들였지만, 결국 그 역시 똑같다는 걸 느끼면서 사람들에게 더욱 마음의 문을 닫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관객: ‘분장’이 철학적인 제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외에 생각한 제목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남연우: 처음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 가제라도 있어야겠더라고요. 그 때 갑자기 ‘분장'이라는 제목이 떠올랐어요. 그렇지만 시나리오를 쓰면서도, 결과물이 나왔을 때도 ‘분장'이 약간이 옛날스럽다, 세련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제목으로 매력이 없는 것 같아서 주변에 많은 자문을 구했는데, 한 선배님이 ‘이해와 인정’이라는 제목을 지어주더라고요. 많은 고민을 했으나 결과적으로 배우가 얼굴에 분칠하는 것과 인간이 내면에 분칠을 하는 것이 머릿속에서 깊게 박혀있어 <분장>이라는 제목을 선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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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태어나도 우리한줄 관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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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수 | 인간이 숭고해지는 영화적 진실성에 대해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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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태어나도 우리> 리뷰: 인간이 숭고해지는 영화적 진실성에 대해 생각하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범수 님의 글입니다.



환생한 티베트 수도승 ‘린포체’로 지명된 소년 ‘앙뚜’와 그의 늙은 스승 ‘우르갼’의 삶을 담은 <다시 태어나도 우리>를 보는 내내, 스치는 당혹감에 자리를 계속 고쳐 앉았다. 작가의 개입과 허구적 요소를 최소화하는 것이 피사체를 대하는 다큐멘터리의 진실성이라는 평소의 생각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두 개의 장면을 이야기하고 싶다. 사원에 두 명의 린포체를 들일 수 없다는 원칙 때문에 앙뚜가 쫓겨나자 우르갼은 앙뚜가 전생을 살았던 티베트의 캄으로 그를 데려가기로 결심한다. 캄 인근의 국경 도시에서 둘은 매점을 운영하는 중년 여인을 만난다. 여인이 캄에 가려는 이유를 묻자 우르갼은 앙뚜의 정체를 알린다. 여인이 절을 하고 린포체는 여인의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한다. 의문점은 앙뚜가 린포체임을 알리는 우르갼과 앙뚜에게 절을 하는 여인이 하나의 연속된 쇼트가 아닌 쇼트-리버스 쇼트로 처리되었다는 데에 있다. 이것은 편집이라는 허구적 조작을 실재의 기록에 개입시킨 하나의 결단이다. 그렇다면 그 결단은 무엇을 향하는가. 우르갼의 말과 여인의 절 사이에 존재했을 간극은 과연 무엇일까.


분절된 쇼트는 이후에도 등장한다. 앙뚜와 우르갼의 사정을 알게 된 어느 사원에서 앙뚜에게 린포체 교육을 제공하기로 하자, 우르갼은 자신의 소임이 다했음을 깨닫고 작별을 고한다. 우르갼이 눈물을 흘리지만 앙뚜는 당면한 상황을 애써 부정하려는 태도를 보일 뿐이다. 앙뚜의 눈물이 등장하는 것은 그 다음 쇼트이다. 우르갼과 앙뚜의 눈물에는 분명한 시차가 있다. 그 시차를 생략해버린 결단은 매점에서의 쇼트-리버스 쇼트와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있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다큐멘터리가 작가의 개입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를 객관적으로 기록해야 한다는 말은 형용모순을 안고 있다. 현실에 특정한 구도의 프레임(혹은 카메라)을 가져다 대는 순간, 현실은 그 프레임에 따라 해석되고 보여지기에 모든 관점에서의 보편성을 의미하는 객관성은 결코 확보될 수 없다. 다큐멘터리 작업에 작가의 개입이 원천적으로 배제될 수 없는 것도 바로 프레임의 주체가 작가이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란 결국 작가라는 주체의 인식을 기반으로 실재에 최대한 가깝게 재구성된 현실의 모사인 셈이다. 그러나 모사가 곧 진실성에 반하는 것은 아니다.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단 하나의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주체의 인식에 따라 현실이 재구성된다는 말은 하나의 현상을 두고 주체의 수만큼 서로 다른 진실들을 드러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다큐멘터리 역사에 족적을 남긴 작가들은 그 진실성을 획득하기 위해 현실을 어떻게 재구성해야 할 지를 정확히 아는 선구자들이었다.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알려진 로버트 J. 플래허티 감독의 <북극의 나누크>(1922)는 가장 유명한 예시일 것이다. 플래허티는 캐나다 북부에 거주하는 이누이트 족의 일상을 담는 과정에서 그들에게 연기를 요구했다. 실제로는 바다코끼리 사냥에 총을 사용하던 이누이트들이 그의 뜻에 따라 작살을 꺼내든 것이다. 플래허티는 스스로와 관객 모두를 기만한 것일까? 그보다는 플래허티가 중요하게 여긴 진실이 기계적으로 기록된 이방인의 생활상 그 자체가 아닌, 유럽과는 상이한 환경에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적응해 살아가는 비유럽인의 존재를 드러내는 데 있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의 <그리즐리 맨>(2005)이 진실에 접근하는 방식도 눈 여겨 볼 만 하다. 알래스카의 곰들과 어울려 살다가 결국 곰에게 잡아 먹힌 환경운동가 티모시 트래드웰을 다룬 이 다큐멘터리에서 헤어조크는 나레이션과 인터뷰를 활용해 트래드웰의 삶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트래드웰의 행적을 단순히 기록하는 데에 그쳤더라면 <그리즐리 맨>은 지구의 암적 존재인 인간의 횡포에 맞서 곰들을 지켜내고자 했던 어느 낭만주의자의 비극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헤어조크의 개입은 약육강식이라는 비정한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지 못한 망상가로서의 이면을 들추어낸다. 헤어조크가 밝혀내고자 했던 진실은 트래드웰이라는 인간과 그 사상의 본질이 아닌, 그의 삶이 내포한 인간 존재의 태생적 다층성과 다면성이었다.


다소 우회한 이야기를 <다시 태어나도 우리>가 두 수도승을 대하는 태도로 끌어 와 생각해 볼 차례다. 영화의 전반에 짙게 깔려있는 종교적 숙명은 앙뚜와 우르갼의 서사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영화가 그 숙명에 앞서 줄곧 주목하는 지점은 아이와 노인이 영위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나날들이다. 노인들의 머리를 매만지던 앙뚜는 린포체이기에 앞서 또래들과 뛰어 놀고 싶은 한 명의 어린이다. 앙뚜는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다. 앙뚜의 불안을 가장 잘 이해하고 달래주는 존재는 바로 우르갼이다. 중생들을 다스리고 이끌어야 할 종교인으로서 가져야 할 태도를 조언하기도 하지만, 앙뚜를 먹이고 재우면서 공부를 게을리할 때마다 꾸지람을 내리는 모습은 영락없는 할아버지와 손주의 관계다.


일상의 먹고 사는 문제가 전면에 등장할 때, 영화는 헤어조크의 인터뷰가 트래드웰의 삶에 개입한 것처럼 인물들에게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간다. 상자에 지폐를 넣는 우르갼의 손과 난로에 기름을 붓다가 불을 낼 뻔한 앙뚜의 손을 포착하는 클로즈업은 영적 지도자들을 더없이 인간적으로 보이게 한다. 쇼트-리버스 쇼트의 결단도 어쩌면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물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시간적인 거리까지도 줄임으로써 인물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한층 부각시키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인간적인 것들에 대비되는 초월적이고 지고한 것들은 더없이 먼 곳에서 인간을 굽어본다. 티베트인들의 성산(聖山)인 히말라야와 카라코람의 고봉들, 윤회를 끊기 위해 갠지스 강어귀를 밝게 물들이는 화장의 불길, 하늘의 별 대신 무수히 빛나는 도시의 조명들은 속세의 번뇌와는 한참 떨어진 별세계처럼 보인다. 그 별세계를 지나 온 앙뚜와 우르갼의 여정이 방점을 찍는 순간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눈보라를 헤치고 캄으로 향할 때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 위를 걷던 앙뚜가 힘이 들어 더 이상 걷지 못하겠다고 하자 우르갼은 조금만 더 힘을 내라고 다독인다. 시계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더 이상의 이동은 무리였기에 우르갼은 앙뚜에게 소라나팔을 불게 한다. 소리를 듣고 캄의 수도승들이 그들의 존재를 알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을 찾아오지 않고 조우는 실패한다.


이 장면은 이상하게도 ‘진실을 위한 조작’을 수행했던 플래허티의 카메라를 떠올리게 한다. 초월적인 것들은 시야에서 사라졌고, 카메라는 모든 것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듯이 무심한 롱 쇼트로 육체적 한계에 다다른 앙뚜와 우르갼을 포착한다. 종교적 숙명의 무게보다 당면한 인간적 고통이 부각되는 순간, 롱 쇼트는 오롯이 둘만을 포착함으로써 눈물의 쇼트-리버스 쇼트에 비할 수 있는 어떤 진실에 다가간다. <다시 태어나도 우리>가 도달하는 지점은 종교 없이 인간 그 자체를 숭고하게 다룰 수 있다고 믿는 휴머니즘이다. 영화는 서로에게 의지하는 앙뚜와 우르갼에게서 운명의 굴레를 한 꺼풀 벗겨내 언 땅에 굳게 두 발을 딛고 선 인간을 보여준다. 종교라는 주제를 손쉽게 답습하는 대신 그 안에 존재하는 인간의 모습에서 적극적으로 진실을 찾아내려는 태도는 형식에 대한 교조적 태도를 넘어 큰 울림을 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진실성이야 말로 <다시 태어나도 우리>가 가진 가장 큰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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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얼굴들과 목소리들에 대한 기록

 여성영상집단 움 다큐전: 페미니즘으로 비추다 <우리들은 정의파다>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7년 9 29일(금)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이혜란 감독

진행 김소희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신 님의 글입니다.



인디토크가 진행되는 동안 던지는 질문에 앞서 관객들은 '이런 사건을 알지 못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고, 반성한다.'는 고백을 반복적으로 꺼내놓았다. 9월 29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여성영상집단 움’의 기획전의 일환으로 관객들을 만난 <우리들은 정의파다>는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사실들에 관한 기록이다. 부당한 해고를 당한 동일방직의 여성노동자들은 1978년부터 약 40여년간 복직투쟁을 지속하고 있으며 이 사건은 <우리들은 정의파다>가 제작된 지 10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사건의 충격적인 내막에 대해 우리가 무지했다는 점, 그리고 과거의 영상에 기록된 투쟁이 여전히 종결되지 않고 어딘가에서 지속되고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우리의 부끄러움을 끊임없이 자문하게 한다. 여기, 우리가 알지 못하는 기억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김소희 평론가(이하 김): 영화를 보고 울컥한 상태에서 진행을 하려니 힘든데요,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영화에 대해 더 잘 이야기할 수 있는 때라고 생각하고 진행을 해보겠습니다. 먼저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혜란 감독(이하 이): 큰 계기가 되었던 것은 <평행선>(2000)이라는 작품입니다. 저는 90년대부터 노동 관련 영화들을 만들어 왔어요. 2000년에 현대자동차 측의 대량해고 결정에 대한 파업이 있었고 그 파업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정리해고 대상자들 277명 중 144명이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분들이었어요. 파업 과정을 기록하면서 이들이 왜 정리해고 대상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들은 누구보다 선봉에 서서 투쟁을 했어요. 단순히 연세가 있어서, 집안에서 아내 아니면 어머니로서 젊은 노동자들을 위해 해고되어도 괜찮다는 인식이 작용했기 때문에 정리해고를 당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밥짓는 노동에 대한 폄하의 시각도 있었겠고요. 이런 성차별적인 행간에 주목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영화를 시작했는데, 그 노동운동 안에서도 여성으로서, 소수자로서 노동을 한다는 것은 또 다른 조건인 것 같아요. 그런 배제된 환경 속에서 투쟁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흔히 한국 노동운동의 시작점이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이라고 하는데요, 저는 그 안에서 여성노동자들의 역사는 누락되거나 배제되었다고 생각을 해요. 실제로 방금 상영한 영화의 동일방직 사건을 찾아봐도 똥물 사건이나 나체 시위 같은 사건 위주의 기록들이 대부분이고 실제 이 여성노동자들이 당시에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 어떤 고민을 했는지에 대한 부분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이야기를 기록해보고 싶었습니다.  



김: 이들의 실제 목소리를 듣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을 것이고 실제로도 그 부분이 굉장히 잘 표현된 것 같아요. 거의 인터뷰 다큐멘터리의 교과서라 할 정도로 인터뷰들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장소가 각자의 집이었고 개별적으로 인터뷰를 했습니다.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이: 감사합니다. 교과서적이라니, 교과서로 만들어서 팔까요?(웃음) <우리들은 정의파다> 작업을 진행하면서 구성과 연출방향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누락되고 배제된 역사 속 여성들의 주체성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그들이 함께 할 수 있었을까 하는 고민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인터뷰를 한 당시에도 동일방직에 대해서, 그리고 해고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그 분들의 가족들도 잘 몰랐던 경우가 굉장히 많았어요. 왜냐하면 당시에 동일방직에서 해고됐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낙인이었고, 박정희 시대에 낙인은 가장 무서운 것이었기에 여성노동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건 굉장히 어려웠어요. 본인의 기억을 본인의 방식으로 이야기하도록 구술 인터뷰로 진행했습니다. 그 때 호명이라는 컨셉을 생각을 했어요. <우리들은 정의파다> 속 인물들은 원래 ‘2번 시다’와 같은 방식으로 불렸거든요. 2번줄에서 일하는 시다인 거죠, ‘이혜란’이 아니라. 그래서 저는 이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속에 이름 외에는 직급, 나이 등 아무 정보도 넣지 않았어요. 개인의 경험을 이야기하면 함께 있었던 동료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와요. ‘정남이가- 순애가- 그랬지.’와 같은 말들을 통해서요. 이렇게 흘러나오는 말들이 여성들이 지니고 있는 공동체성 안의 자매애를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여성들의 기록 자체가 한국 여성들의 역사 안에서 호명되는 기록이기도 하고요. 개인의 기억이 공동의 기억으로 이야기되는 방식을 상상하면서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해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려 했습니다. 



김: 개인의 말을 자막으로 잘 전달하면서 한 명 한 명을 굉장히 소중히 기억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관객: 기억이라는 것이 원래 말을 하면서 더 정확해지는 지점이 있기도 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개인 인터뷰 말고 그룹 인터뷰도 어쩌면 공동의 기억을 정확하게 할 수 있는 방식이 될 수 있었을 것 같고, 또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면서 관계성을 부각시켜주는 측면에서도 좋을 것 같은데, 혹시 단체 인터뷰는 의도적으로 배제한 건지 궁금합니다. 



이: 특별히 단체 인터뷰를 진행하진 않았습니다. 개별 인터뷰를 같이 수다를 떠는 모습처럼 보이게 편집을 했어요. 





관객: 연대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남성노동자와 여성노동자들 사이를 분열시키고 이간질시키는 방식이 실행되었다는 사실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혹시 이렇게 연대를 다루는 또 다른 작품을 제작할 의향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어용 노조는 다 관리직 안의 남성들을 토대로 구성이 되었고 해고된 사람들은 여성노동자들이었죠. 이런 부분이 정부의 사주와 착종되면서 타겟이 되는 방식이 참 두렵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고민하고 있는 다음 작품은 동일방직의 김용자 씨와 한진중공업의 김진숙 씨의 복직의 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투쟁을 겪어오면서 이 분들이 가지고 있었던 꿈과 열망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실제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KTX 여성노동자들의 복직투쟁에 도움을 주시고 있고 또 동일방직을 둘러싼 문제들이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해 많은 공감을 하고 계십니다. 자신들을 닮은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응시한다는 면이 어쩌면 연대의 측면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 동일방직 복직투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현재진행형 사건이라는 점에서 역사의식을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그 사안을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 과거는 지나간 게 아니고 현재와 단절될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기억들과 경험들은 현재의 삶 안에 같이 존재하고 있고, 어쩌면 이것들이 자신의 미래를 투영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정의파다> 속 사람들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복직이라는 꿈이 있고, 그들의 현재와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관객: 이 분들의 현재가 궁금해져요. 지속적으로 투쟁을 한 건지, 아니면 그 과정 속에서 잠깐 쉬거나 다른 국면을 맞이하기도 했는지도 궁금합니다. 



이: 81년에 해고소송과 관련한 판결이 대법원에서 나온 적이 있습니다. 해고가 부당한 게 아니라 적법하다는 판결이 났죠. 78년 이후 복직투쟁을 계속하면서 여성노동자들이 실제로 먹고 살 수 있는 방편이 하나도 없었어요. 가족의 생계와 자신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데 블랙리스트 때문에 취업이 안 되니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면서 단체보다는 개인의 삶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했죠. 다시 이 언니들이 모이게 된 것은 2001년에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이 되면서부터였습니다. 이 때 투쟁을 지속하면서 해고는 부당하다는 판결이 나오고 회사측에 복직이 권고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권고차원이니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그런 계기를 통해 현재까지는 이 분들이 서로 좀 더 안정적으로 만나고 운동을 하고 있죠. 3년 전부터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데, 고등법원에서는 이겼고 대법원에서 기각이 되었어요. 국가가 블랙리스트를 통해 이들의 생계에 손해를 끼친 점에 대해 배상을 하라는 내용의 소송인데, 지금은 마지막 헌법재판소에서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김: 재판은 언제 마무리가 될까요? 



이: 모르겠어요. 정권이 바뀌면서 어느 정도 제대로 된 판결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는 하고 있습니다만, 아직은 정리가 안 되어서 섣불리 말을 할 수가 없네요. 





관객: 저 같은 일반 사람들이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우선<우리들은 정의파다>를 많이 홍보해주세요.(웃음) 동일방직 사건을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사진이 똥물사진과 나체시위 사진이에요. 그런데 이야기가 없는, 그리고 주인공들이 없는 그 이미지만 보고 사건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실제 그 여성노동자들의 말과 얼굴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이 분들과 유사한 상황이 주변에도 있을 수 있어요. 옆에 있는 친구들, 혹은 현재 투쟁을 하고 있는 KTX 노동자 분들이 그 분들이라 생각하고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관객: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시간과 인내가 정말 많이 필요할 텐데 어떤 재미로 작품을 지속적으로 만들 수 있는 건가요?(웃음) 감독님만의 열정과 쾌감이 궁금합니다. 



이: 대상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는 순간이 너무 좋아요. 카메라로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이 좋아서 영화를 시작했어요. 기획하고, 만나서 섭외를 하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 그 과정 속의 감정이야말로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김: 감독님께 끝 인사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부탁드리면서 마무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여성의 깊은 내면에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영화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곧 있으면 완성이 될 것 같은데, 많이 기대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우리들은 정의파다>를 널리 홍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인디스페이스에서 이렇게 좋은 기회를 마련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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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일상을 연기하는 우리에게  <여배우는 오늘도>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7년 9 28일(목) 오후 8상영 후

참석 문소리 감독 | 배우 전여빈, 윤영균

진행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








*관객기자단 [인디즈] 남선우 님의 글입니다. (사진: 김은혜 님)



<여배우는 오늘도>가 상영되는 동안 객석에서는 쉴 새 없이 웃음, 탄식, 한숨이 흘러나왔다. 포스터 속 붉은 드레스의 문소리가 서 있던 땅도 결국 드넓은 운동장이었던 것처럼 영화 속 많은 순간들이 우리의 일상과 닮아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딸로, 엄마로, 직업인으로, 그것도 여성 배우로 살아가는 문소리의 이야기가 스크린을 넘어 인디스페이스 인디토크 현장에서 계속 되었다.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이하 원): 저는 이 영화가 좋았던 게, 유머엔 두 가지가 있잖아요? 약간 공격적인 유머가 있고 자기를 디스하는 유머가 있는데, 이 영화는 전편에 문소리 감독 겸 주연배우가 자기 디스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게 ‘웃프다’고 해야 될까요? 웃기면서도 슬프고 심각하면서도 공감이 가고. 일단 왜 이런 영화를 만들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문소리 감독(이하 문): 제 안에서 변화의 시기가 왔던 것 같아요. 많이 흔들리기도 했는데, 그럴 때 기둥을 세우는 심정으로 무언가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때 시작한 게 영화에 대한 공부였어요. 공부의 과정에서 세 편의 단편을 만들었고, 큰 기획 영화에만 익숙해져가는 관객들에게 저예산 영화에도 각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는 게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여기까지 왔네요. 이제 1만 관객을 넘어 2만을 향해 가고 있는데, 개봉을 안 했으면 몰랐을 세계가 있구나 생각을 해요.



원: 이 영화를 네다섯 번 봤는데, 도발적이고 솔직하기 때문에 순서를 1-3-2로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장례식장에서 끝나는 게 어떻게 보면 좀 전형적인 것 같아서요. 어떤 의미로 순서를 정한 건가요?



문: 그 순서를 제가 고집했어요. 1, 2, 3이 촬영한 순서이기는 해요. 2013년 11월에 1막을 찍었고 2막을 2014년에 찍었고 3막을 2015년 봄에 찍었어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영사기사님의 실수로 1-3-2로 상영을 한 적이 있는데, 관객들 반응은 나쁘지 않았어요. 그런데 저는 2막이 엔딩으로 오면 그냥 저만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 같았어요. 3막이 마지막에 와야 이것이 우리의 이야기로 끝날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도 나와 함께 걸어가야 할 많은 영화인들, 예술을 지향하는 분들과 함께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 이 영화에서 문소리 감독을 제외하고 1, 2, 3막에 모두 출연한 분은 매니저 역할의 윤영균 배우에요. 처음에는 비전문배우인 줄 알았어요. 영화 찍는 동안 어땠어요?



윤영균 배우: 촬영하는 동안 너무 재밌었습니다. 1, 2, 3막에 따라서 매니저의 성격이 조금씩 변하는 지점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초반에는 문소리 선배님이 너무 어려웠어요. 영화의 주연배우이자 감독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어려움이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걸 발전시키는 과정이 즐거웠던 촬영이었습니다.



원: 또 보면 아시겠지만, 롱테이크가 많아요. 아주 어려운 연기 작업이었을 텐데, 3막에 나오는 전여빈 배우는 어떻게 임했을지 궁금해요.



전여빈 배우: 3막의 제목이 <최고의 감독>인데요, 말을 하는 연기로는 진정한 데뷔작이라 할 수 있어요.(웃음) 롱테이크 개념도 배워서는 알았지만, 몸으로 익힌 것은 처음이었어요. 어렵다기 보다는 흘러 가는대로 연기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원: 혹시 감독을 또 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관객들의 마음을 계속해서 많이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문: 사실 연기자로 할 작품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연출을 하다 보니 사람이 많이 늙어요.(웃음) 그걸 또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고요. 그렇지만 저의 영화 인생은 늘 제가 꿈꿨던 그 이상으로 다이나믹한 일들이 많이 펼쳐졌어요. 연극에서 작은 배역 하는 걸 꿈꾸다가 이렇게 오래 영화를 하게 되고 연출까지 하게 됐는데, 할 수 있는 것들을 최선을 다해서 해보는 편이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의 연출 도전에 대한 정말 솔직한 심정은 ‘뭐라 말씀드리기 어렵다’인 것 같네요.



관객: 세 편의 단편을 따로 구상한 건지, 아니면 장편으로 만들 것으로 생각하고 세 편을 구상한 건지 궁금합니다.



문: 하나하나 찍을 때마다 그냥 그 작품만 생각했어요. 이걸 꼭 이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결국 같은 고민의 연장이라 세 편이 하나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대학원 과정이 세 편을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에 잘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지, 그 다음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관객: 막이 시작될 때마다 차에서 시작되더라고요. 이게 단편 시나리오 상에서도 그랬는지, 장편으로 편집을 하느라 그렇게 한 건지 궁금합니다. 또 술과 선글라스가 가지는 의미가 궁금합니다.



문: 1막과 3막은 시작할 때부터 차 안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시나리오를 썼어요. 2막은 시나리오 상에서는 그렇지 않았고 제가 방에 혼자 누워있는 것으로 시작을 했어요. 그런데 만들고 보니 너무나도 수많은 단편 영화들이 침대에 누워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아무 생각 없이 찍고 보니 너무 기시감이 들어서 “내가 이걸 어디서 봤지?” 했더니 옆에서 그러더라고요. 단편 영화의 60퍼센트 이상이 그렇게 시작한다고요. 그래서 그걸 들어내고 차에서 시작하고 끝나는 수미상관으로 편집을 했습니다. 그리고 상영을 하면서 알게 된 게, 세 편 모두 저의 뒷모습으로 끝난다는 거예요. 너무 재미없게 퍼즐이 맞춰졌습니다.(웃음) 

선글라스는 제가 너무 민낯으로 다니는 걸 좋아하니까 알아보는 분들의 편의를 위해서 끼곤 해요. 술은 오래된 친구 같은 존재죠. 제 삶의 구석구석에 함께 했는데 이젠 일이 많아지다 보니 힘들어서 가끔씩 끊어요. 금주기간을 갖는 건 할머니가 될 때까지 더 잘 먹어보려고 그런 거고요, 잘 조절하면서 같이 늙어가는 방법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관객: 저는 포스터 모으는 게 취미인데, <여배우는 오늘도> 포스터는 영화에 없는 장면이더라고요. 무엇을 의도한 건지 궁금합니다.



문: 많은 저예산 영화들이 포스터 촬영을 하지 않아요. 인상적인 스틸이나 대표적인 장면으로 디자인을 하죠. 근데 그게 좀 재미가 없을 것 같다는 의견이 있었어요. 홍보사에서 제가 드레스를 입고 레드카펫을 밟았던 사진을 써서 화려하고 당당한 드레스의 뒷자락에 삶의 이면이 펼쳐질 것 같은 느낌을 불어넣어주자고 제안을 했어요. 그러다가 제니퍼 로렌스가 드레스를 입고 영화제에서 넘어진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여배우의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어떨까 생각을 하게 됐죠. 그래서 계단이 있는 장소를 헌팅하던 차에 계단에서 넘어지는 것은 표정이 드러나기 힘들 것 같아 제가 강의하고 있는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의 대운동장 트랙을 뛰어보면 어떨까 제안을 했어요. 트로피도 무얼 들 것이냐 고민을 많이 했어요. 미국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남편과 가짜 아카데미 트로피를 산 적이 있어 그걸 들고 뛰려고 생각했는데, 촬영 날 제가 깜박하고 안 가져간 거예요. 어떡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촬영 지원 나온 매니저가 복싱을 전공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분 친구가 단국대 체대를 나왔고, 체대 과사무실에 가면 온갖 트로피가 다 있다고 했어요. 그 분이 가장 전형적인 트로피의 모습에 가까운 것을 골라서 가져왔어요. 종목과 이름이 쓰인 부분을 손으로 가리고 뛰었습니다.



관객: 요즘 사회적으로 여성주의 이슈가 대두가 되고 있는데, 이 영화가 감독님께 여성주의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문: 적절한 시기에 개봉을 해서 영화계 안팎으로 이 영화를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읽어주는 분들이 많아요.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40년 넘게 살다보니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페미니스트가 된 것 같아요. 차별을 반대하는 거고, 동물애호가 내지는 반핵주의자 같은 것과 뭐가 그리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받아들이고 사람들에게 말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여성의 삶이 소재, 주제가 되고 연출자가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이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잘 모르겠더라고요. 이 영화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게, 그런 (페미니즘적인) 생각을 가졌든 가지지 않았든 우리는 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거예요. 영화라는 작업을 하다보면 수많은 스태프들 생각이 다 다를 수 있어요. 그렇지만 좋은 작품을 위해서 계속 생각을 모으고 의견을 나누고 같이 걸어가야 하더라고요. 인생길에서도요. 같이 걸어가야 그 관계가 나를 세워주고 나에게 힘이 되고 인생에 의미가 되는 것 같아서 ‘그런 관계를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원: 저도 페미니스트거든요. 딸이 셋 있어요. 제 딸들이 불평등한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아요. 요즘에는 의도적으로 영화계에서 여성 캐릭터를 신경 써요. 주도적이고 주관적인 생각을 가진 중요한 여성 캐릭터를 꼭 넣어야겠다고 생각해요.



문: ‘이 캐릭터가 꼭 남자여야 해?’하는 질문을 시작한 거죠. 꼭 비율을 맞추기 보다는 이 캐릭터가 여성이 아닌 것이 단지 관습적이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되고, 이런 대사들은 여성들에게 공격적이고 불편할 수 있지 않을까 많이 생각하게 되는 분위기죠. 굉장히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해요. 결과적으로 누구에게나 만족스럽지는 못하더라도 이 시작과 분위기는 긍정적이지 않을까 싶어요.


















관객: 모든 등장인물이 서로에게 연기를 할 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에게 연기를 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문: 영화를 보면 대부분의 순간에 (문소리가) 제 주장을 강하게 펼치지 않아요. 할 말을 다 못하고 있어요. 계속 불평을 하지만 진심을 다 드러내는 게 아니에요.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음-' 이러고 담고 있죠. 연기자가 아닌 사람들도 상사 앞에서, 딸내미 앞에서 연기할 때가 무척 많거든요.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행동을 할 때가 많죠. 우리 삶 안에 그런 날들이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 같아요. ‘다들 이렇게 살지 않나요. 그렇게 살기 힘들죠?’하는 마음에서 그랬던 부분이 있는 것 같네요.



원: 세 막의 엔딩이 다 따뜻해요. 매니저한테 잘 들어가라고 하고, 영화도 결국 찍게 되고, 장례식장에서의 모습도 그렇고요. 그래서 감독이 위로를 하고 있구나 싶었어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극장 문을 나설 수 있게 하는 건 문 감독의 재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 만들면서 제가 위로를 받았던 것 같아요. 평소에 잘 어울리지 못했던, 이해하지 못했던 다양한 사람들에게까지 이 영화가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고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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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장한줄 관람평


이지윤 | "보세요, 똑같은 인간입니다. 단지, 이 세상이 비극입니다."

박범수 | 타인에 대한 이해, 그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수사에 대하여

조휴연 | '이해한다'는 말의 무게

최대한 | '이해'라는 의미에 대한 잔잔한 파장, 진정성에 대한 의문

이가영 | 자신의 정체성이 세상으로부터 부정당하는 고통을 누가 감히 헤아릴 수 있나

김신 | 진정성이라는 거짓말, 어쩌면 배우의 운명론

남선우 | 스토리가 새 국면을 맞이할 때마다 주인공과 관객을 함께 윤리적 심판대에 올려 놓는다





 <분장> 리뷰: '이해'라는 의미에 대한 잔잔한 파장, 진정성에 대한 의문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대한 님의 글입니다.




남연우 감독이 연출한 <분장>은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최초로 공개된 이후 많은 영화제에서 관객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올 가을, 극장 정식 개봉을 통해 대중들에게 찾아왔다. <분장>은 이전까지 <가시꽃>(2012) 등의 작품에서 배우로 익숙했던 ‘남연우’라는 사람으로부터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무명 연극배우 ‘송준'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송준의 일상은 쉽지가 않다. 매번 오디션에 떨어지고 우연히 치킨집에서 만난 선배로부터 ‘재능이 없으면 포기해야한다’는 말을 듣는 굴욕을 당하기도 한다. 그는 이러한 굴욕을 버텨내고 ‘다크라이프’라는 성소수자를 다루는 연극의 오디션을 보게 된다. 진정성 있는 연기를 위해 성소수자에 관한 영상들을 찾아보고 성소수자인 '이나'를 직접 만나 그녀의 삶에 대해 묻기도 한다. 이러한 노력덕분일까? 송준은 ‘다크라이프’의 주연을 얻게 된다. 성소수자를 이해하게 된 그는 진정성 있는 연기로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고 스타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동생 ‘송혁'과 절친한 친구 ‘우재’의 섹스를 목격하고 충격에 빠지고, 성소수자를 연기하는 자신의 모습과 친동생에 대한 모멸감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끼며 그의 삶은 망가져간다.





배우이자 감독으로서 '남연우'


영화 <분장>의 관전 포인트 하나를 꼽자면 남연우 감독이 느낀 무명 배우로서의 삶이 디테일하게 송준에게 투영되어있다는 점이다. 영화 초반부 송준의 모습에서 남연우 감독의 무명 시절이 얼마나 고됐을 지 추측된다. 송준이 겪는 이 일련의 시련들은 남연우 감독이 직접 겪은 시련일 것이다. 이 시련은 ‘다크라이프’의 ‘안나’를 만들었고 지금의 ‘남연우’를 만들었다. 





'이해'라는 의미에 대한 잔잔한 파장


<분장>은 이전까지의 퀴어 영화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대부분의 퀴어 영화는 성소수자를 담담하게 보여주거나 옹호, 지지하는 방향성을 가지곤 했다. 또한 영화 속의 주인공들이 성소수자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분장>의 주인공인 송준은 중반까지 성소수자를 이해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섹스를 목격한 이후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개인적인 측면에서 <분장>은 ‘이해’라는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잔잔한 파장을 만들었다. 관객들 앞에 보여지는 송준은 성소수자인 ‘안나’를 연기해야한다. 그는 연기를 위해서 진심으로 성소수자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관객들 역시 송준이 성소수자를 진심으로 연기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남 일이라고 생각했을 때인 것이다. 자신의 친동생이 성소수자인 것을 알게 되자 ‘이해’는 ‘위선’이라는 본 모습을 드러낸다. <분장>은 관객들에게 ‘이해’라는 의미에 대해 날카롭게 의문점을 제기한다.





진정성에 대한 의문


최근 한 선생님과 식사를 하면서 ‘작가’와 ‘진정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영화’와 ‘작가의 삶’이 일치했을 때 영화에 ‘진정성’이 생기고, 그것이 진짜 ‘영화’라는 주제의 이야기를 나눴다. 이 대화를 나눈 후에 영화를 보는 시각이 조금은 변화했음을 느꼈는데 <분장>을 보면서 가끔 ‘진정성’에 대해 의심이 가는 부분들이 존재했다. 


동생 송혁과 친구 우재의 동성애는 섹스만으로 모든 것을 표현했다. 영화에서 관계의 과정에 대한 설명은 존재하지 않았고 사랑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섹스만으로 둘의 관계가 구축되어있다. 또한 둘의 섹스는 적나라하게 노출되었고 파격적이다. 둘의 섹스를 목격한 송준은 마치 심판자인 것처럼 둘에게 주먹질을 하면서 벌을 주고 둘을 죄인으로 만든다. <분장>은 어떤 측면에서 성소수자를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에게 너무 가혹하기도 하다. 남연우 감독이 그들의 입장을 생각했다면 과정 없는 섹스로 그릴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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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땐뽀걸즈한줄 관람평


박범수 | 마냥 엄혹할 것 같은 그곳에도 꿈꾸는 아이들의 경쾌한 스텝이 있다

조휴연 | 원하는 '것들'을 가져보기 위해

최대한 | 소녀들에게 선생님은 노력의 결실을 제시했다

이가영 | 막막한 현실에서 회상할 추억이 있다는 든든함

김신 |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법한 올해의 무표정이 여기에 있다

남선우 | 무언가 하고 싶어 하는 마음. 그 마음을 돕는 사람들.






 <땐뽀걸즈> 리뷰: 원하는 '것들'을 가져보기 위해




*관객기자단 [인디즈] 조휴연 님의 글입니다.




“내가 원하는 걸 두 개는 못 가지는 거잖아요”


땐뽀(댄스 스포츠)반의 ‘현빈’은 남들보다 조금 일찍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게 됐다. 선생님의 제안으로 시작한 댄스 스포츠 동아리에 재미를 붙여 활동을 하고 있지만, 마음껏 몸을 던져 연습하기는 힘들다.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스텝을 밟아보는 게 현빈이 할 수 있는 나머지 연습이다. 하지만 친구들한테 그런 사정을 모두 이야기 하기는 힘들다. 연습이 잘 되지 않아서 친구들과 갈등이 생기면 술을 먹거나 담배를 피우고 학교를 빠진다. 현빈의 경우 땐뽀반에 더 마음을 쏟을수록 '하나쯤 즐거운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하는 고민이 커진다. 취미를 마음껏 누리기에 생활은 팍팍하지만, 춤이 재미있고 선생님과 친구들과 있으면 즐겁다. 현빈의 상황을 알게 된 선생님은 네 잘못이 아니다’라거나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라고 직접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현빈이 조금 더 ‘땐뽀’에 마음을 쏟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현빈을 비롯해 거제에서 여상에 다니는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일터로 나가게 될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학교와 가정과 지역이라는 울타리는 아이들로 하여금 먹고사는 문제만을 생각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아이들은 그들의 부모나 선생을 닮아갈 수밖에 없다. 승진을 포기하고 땐뽀반을 맡아 가르치는 선생님의 존재는 영화를 떠받치는 큰 기둥처럼 느껴진다. 많은 어른들과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항상 아이들과 같이 웃고 떠들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 선다. 학교 바깥에서도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 춤을 출 때와 그렇지 않을 때, 현빈을 포함한 땐뽀반의 아이들은 다르다. 춤을 추며 더 많이 웃고, 더 열정적인, 능동적인 사람이 된다. 





<땐뽀걸즈>는 고등학교 시절 즐거운 추억으로 남게 될 동아리 활동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땐뽀반 아이들은 동아리 활동을 언제 그만둬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취업을 앞두고 있거나 가족의 해체를 경험했거나 생계를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각자가 처한 상황은 삶에서 하나 이상의 무언가를 가지는 게, 가질 것을 꿈꾸는 게 사치라고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땐뽀걸즈>는 아이들의 입과 표정, 행동을 통해 '그럼에도 꿈꿔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일' 에 대해 이야기한다. 영화의 말미, 얼마간의 갈등이 있었지만 무사히 대회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와 학교 축제에서 공연을 하는 동안 현빈의 얼굴이 땐뽀반 사이에서 사라지지 않은 것은 그래서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원하는 ‘것들’을 가져보려는 노력이 작은 결실을 맺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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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아버지를 말없이 보듬는 가족이라는 이름  <안녕 히어로>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7년 9 8일(금)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한영희 감독, 손아람 작가, 김득중 쌍용자동차 지부장

진행 김일권 시네마달 대표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범수 님의 글입니다.



사회적 비극에 공감하고 연대하기 위한 첫걸음은 비극의 당사자들을 대상화하지 않는 것이다. 쌍용자동차 사태를 다룬 한영희 감독의 다큐멘터리 <안녕 히어로>가 대상화의 문제를 피해가는 방법은 다소 독특하다. 영화는 투쟁하는 노동자가 아닌 그들의 가족의 시점에서 비극을 조망한다. 투쟁의 지난함을 버텨내는 과정에는 수많은 이들의 말없는 성원이 있었음을 알리기 위한 것일까. 한영희 감독, 손아람 작가, 김득중 쌍용자동차 지부장, 김일권 시네마달 대표가 <안녕 히어로> 인디토크에 함께 했다.





김일권(이하 진행): 관객과의 대화에 특별한 세 분을 모셨다. 각자 자기 소개를 부탁 드린다.



한영희 감독(이하 한): <안녕 히어로>를 연출한 감독 한영희입니다.



손아람 작가(이하 손): 작가 손아람입니다.



김득중 쌍용자동차 지부장(이하 김): 평택에서 온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 김득중입니다.



진행: 기존의 노동 문제를 다룬 영화들과 달리 아이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점이 인상 깊었는데, 영화를 기획한 계기가 궁금하다.



한: 활동하고 있는 ‘연분홍치마’에서 <두 개의 문>(2011)이라는 영화를 제작했다. 그 영화를 배급할 때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분들이 최전선에 나서기 위해서는 가족들의 지지가 필요했을 텐데, 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을 힘겨워 하고 또 죄책감을 가진 분들이 많았다. 영화가 그 소통의 계기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만들었다.



손: ‘현우’는 아버지를 응원하는 아들이자 한 명의 평범한 중학생이다. 아버지의 패소판결을 치킨을 뜯으면서 보는 장면처럼, 아버지의 싸움이 아들 세대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지를 보여주는 게 흥미로웠다. 역설적으로 당사자의 시선에서 멀어질 때 정서적으로 훨씬 더 가까이 다가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한: 이 영화가 노동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지만 결국에는 가족 영화다. 가족 영화의 포맷이 훨씬 더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게 가능 하려면 구성이나 캐릭터 설정이 잘 되어야 했고, 그런 방향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



진행: 지부장님도 당사자의 입장에서 영화에 많이 등장했다. 당사자의 깊은 이야기들이 덜 다루어졌다는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 쌍용차 투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좀 더 알리고 싶었다. 1년 3개월 동안 갇혀 있었고 9년 가까이 같은 곳을 바라보며 싸웠다. 그 기간 동안 김정운 동지(현우 아빠)를 잘 알고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김 동지의 몰랐던 모습을 알게 되었다. 장면 장면이 가슴이 아프더라. 영화에서 현우가 검찰청으로 교복을 받으러 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에 등장하는 지하 터널이 김 동지와 내가 재판 때문에 같이 돌아다녔던 곳이다. 그 행사에 현우를 보내자고 한 게 나다. 숙제처럼 겪어야 한 시간이 괴로웠겠구나 생각을 하면서 자연스레 나도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몇 년을 달려왔는데, 그게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끝나지 않은 문제가 해고자뿐만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를 얼마나 파괴하는지, 또 그것을 복구하려면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한 지를 잘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진행: 촬영에 가족들의 동의가 필요했을 텐데, 그 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같은 게 있나.



한: 영화를 찍기 위해 집으로 들어간 카메라를 가족 구성원들이 편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을 찾기가 힘들더라. 현우 아버지께 고민을 털어놓으니 바로 좋다는 말을 하셨다. 지부장님과 현우 아버지 중 어느 분을 찍어야 할 지 고민했는데, 현우 어머님께서 유독 좋아하시더라. 해고 때문에 가족이 어려운 일들을 쭉 겪어왔는데 아이들과 함께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야기를 듣고 현우의 동생 민서는 너무 신나 했는데, 정작 현우는 나오기 싫다는 말을 했다. 그 이유를 듣기 위해 현우와 이야기를 많이 하다 보니 현우를 주인공으로 하고 싶은 생각이 생겼고, 현우도 이야기를 나눈 후에 영화를 찍겠다는 말을 했다.



관객: 현우 가족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나.



한: 현우보다 부모님들의 변화가 더 많이 엿보였다. 현우의 변화라고 한다면 아버지의 복직을 계기로 더 밝아졌다는 것이다. 오히려 부모님들이 현우에 대해서 몰랐던 부분을 너무나도 많이 알게 되어 놀랐다는 말씀을 하시더라. 현우에 대한 미안함이 컸다는 말을 하셨다. 현우 부모님뿐만 아니라 해고자 분들이 거의 다 그런 것 같다. ‘왜 그 때는 몰랐을까?’라는 미안함이다. 그런데 저는 굳이 그 분들이 미안해 하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부정적인 영향과 긍정적인 영향을 모두 받으면서 성장하는 것이니까 너무 죄의식을 갖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물론 부모님의 마음이라는 게 그러기 쉽지 않지만 말이다.





진행: 이 가족이 참 부러웠다. 가족들이 서로 친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 아닌가. 이렇게 화목한 가정을 계속 유지한다는 게 대단했고, 그 가정을 누군가가 이렇게 오랫동안 괴롭히고 있었구나 생각했다.



한: 지부장님은 주로 무엇을 들고 귀가하시나.



김: 저도 주로 치킨을 사 들고 간다.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그래서 못 받은 사랑을 아들에게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활동 때문에 이야기를 많이 못 나눴다. 그런 점이 미안하다. 요새는 아들과 맥주 한 잔씩 한다. 뽀뽀도 고2 때까지 했다. 지금은 좀 싫어한다.(웃음)



관객: 한신대 학생들이다. 교내 문제로 저희도 농성을 일 년 정도 했는데, 정말 외롭고 힘들더라. 그런데 쌍용차 투쟁은 9년 가까이 이어오지 않았나. 지부장님께는 현우에게 아버지가 그렇듯이 버틸 힘을 준 ‘히어로’가 있었나.



김: 저희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함께 해준 분들 모두가 힘이 되었다. 우리들만 있었다면 과연 버틸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든다. 2009년에 지도부 97명 전체가 구속 연행되고, 조합원들이 몇 년을 외롭고 힘들게 보냈다. 2011년 하반기부터 다시 문제가 알려지고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공감대가 생겼다. 외부의 적 앞에서는 똘똘 뭉쳐 있지만, 오히려 먹고 쓰고 생활하는 데에서 내부의 갈등이 많다. 8월 중순부터 공장과 청와대 앞에서 다시 농성을 시작했다. 주신 도움들 하나 하나 기억하면서 지금도 당당하게 싸우고 있다. 한신대에서도 함께 해주셨는데, 저희가 큰 도움을 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



진행: <안녕 히어로> 제목의 의미에 대해 질문 드리고 싶다.



한: 제목의 ‘굿바이’는 현우의 상반된 두 가지 마음과 관련되어 있다. 아버지가 이겼으면 하는 소망과 지는 싸움을 계속 보게 될 때 함께 지치는 것 사이의 갈등을 생각했다. 현우는 절망하지만 끊임없이 성장하고 변화한다. 스무 살이 된 현우는 또 다를 것이다. 중요한 건 현우가 대답을 하는 시점이다. 힘이 없는 안타까운 영웅인 아빠를 마주하는 현실과 작별하고 싶은 마음이 담긴 제목을 선택하기는 했지만, 힘없는 자들이 힘있는 영웅처럼 대접받았으면 하는 생각도 있다. 영화가 그런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노동자들이 좀 더 가치 있는 존재로 존중 받는 세상에 대한 제안서로 보였으면 한다.



진행: 모두가 누군가의 히어로가 될 수 있는, 외부의 히어로가 필요 없는 세상이 진짜 좋은 세상이 아닐까 한다.



관객: 영화라는 매체는 소설과 다르게 시각적 효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창작자의 입장에서 작품을 만들 때 그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하다.



한: 창작자이기도 하지만 활동가라는 정체성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이다. 현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특정한 감정이 굉장히 강하게 다가오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 감정이 나침반이 되는 것 같다. 쌍용차 투쟁이든 촛불집회든 세월호든 말이다. 이번 영화에서 가장 많이 느꼈던 건 아이들과 소통하고 싶은 부모님들의 열망이었다. 그 감정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그 고민은 곧 영상 작업에 닿아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연분홍치마는 페미니즘 이론 세미나로 시작했는데, 이론이 아닌 활동을 시작해보자는 결심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방법에 대한 고민을 했다. 가장 적합한 방법을 찾다 보니 영상을 시작하게 됐고 어언 12년을 이어오고 있다. 많은 분들의 도움이 힘이 된다.



관객: 개인적으로 지부장님의 팬이다. 쌍용차 동지 분들이 밀양, 강정, 용산에서 함께 해주시는 것을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김: 저는 아직 투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말을 계속 하고 있다. <안녕 히어로>가 곧 평택에서도 상영될 텐데, 아직 복직하지 못한 130명의 동지들이 어떻게 볼 지 걱정되기는 한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해고자들이 용기를 얻을 수 있도록 영화를 많이 알리고 도와주셨으면 한다.



진행: 아직 쌍용차 투쟁은 갈 길이 멀다. 주변에 영화를 많이 알려주셨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GV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린다.





현우 가족의 싸움은 일단락되었지만 쌍용차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많은 노동자들이 여전히 복직을 위해 싸우고 있고, 돌아가지 못한 이들의 뒤에는 다시 그들을 남몰래 응원하는 수많은 가족들이 있다. 이들의 이야기가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이 발견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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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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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배우는 오늘도> 리뷰: 문소리의 목소리에 대한 영화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신 님의 글입니다.




1.  

3부작으로 구성된 <여배우는 오늘도>에서 가장 이질적으로 부각되는 챕터는 ‘최고의 감독’이라고 제목 붙여진 마지막 세 번째 장일 것이다. ‘소리’는 14년째 새로운 작품을 만들지 못하고 영면한 한 무명감독의 장례식장에 참석한다. 부조금만 전하고 빠져나오려했던 식장에서 우연히 배우인 동료와 후배를 마주치며 술잔을 기울인다. 대화가 진행되던 와중에 난데없이 예술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며 고성이 오고가고, 소리는 잠시 자리를 피해 들어간 방안에서 무명 감독의 아들과 함께 감독이 생전에 촬영했던 영상들을 감상한다. 영상을 보던 소리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몇몇 이들에게 이 장면이 당황스럽게 느껴졌다면 소리가 울음을 터뜨리게된 전말이 극중에서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때문에 1부와 2부를 거쳐오며 대한민국에서 여배우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사실적인 보고서를 자임했던 영화의 톤은 3부에 이르러 갑작스럽게 굴절한 것처럼 보인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글의 말미에 이르러 별도의 해석을 할당할 수 있을 것 같다. 





2.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을 수료하며 문소리는 2014년과 2015년에 거쳐 세 편의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여배우는 오늘도>는 그 작품들을 하나로 아우르는 문소리의 데뷔작이다. 서술어가 생략되어있는 제목의 공란에 기입될 여배우의 이야기는 무엇일까. 고고한 아우라와 원색의 드레스로 치장하고 레드카펫을 우아하게 미끄러지는 통념적인 여배우의 이미지일까. <여배우는 오늘도>는 다른 길을 택한다. 여성혐오가 공중의 화두로 부각된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성중심적인 재현물이 박스오피스를 점령한 시대에 문소리는 소셜미디어와 옴니스코프 시대에 살고있는 우리들의 절시증을 자극하는 환상담을 제공할 생각이 없다. 대신 여배우라는 환상의 이면에 자리한 인간 문소리의 소탈한 고백이 주를 이룬다. 주인공인 소리는 술자리에서 원치않게 동석한 남성들로부터 발설되는 저속한 농담을 견디고, 여배우이기에 매일 드레스를 입을 것이라는 주변인들의 왜곡된 환상에 둘러싸여 산다. 심지어 친구들과 가족들도 언제나 그에게 여배우라는 호칭을 부과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소리의 일상에는 어딜가나 ‘여배우’라는 수식어가 인스타그램 해시태그처럼 덕지덕지 달라붙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배우는 오늘도>에는 위와 같은 많은 사건들이 벌어지지만 일련의 사건들은 비단 극중의 상황으로만 인지되지 않고 새삼스럽지 않은 기시감을 불러일으키고 있기도 하다. 여성이기에 영화계에서 모멸감을 당했어야했던 많은 이들의 증언이 도처에서 가시화되고 있는 영화 외적 상황이 우리의 지각에 은밀하게 스며들고 있기 때문일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할 것이다. 비단 '영화계 내 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로 불거진 근래의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 잘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도 <여배우는 오늘도>는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극중 소리의 일상은 여직원, 여선생, 여류작가등 여성이기에 들러붙는 수많은 멸칭을 달고 살아야하는 이들의 일상과도 공명하는 많은 지점들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배우는 오늘도>가 비단 여배우에대한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여성을 특정한 이미지로밖에 상상할 수 없게된 한국사회의 환부를 까발린 투시도라고 생각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한 편으로 투시도라는 단어는 양의적이다. 그것은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한국사회의 민낯을 투명하게 내비치고자 하는 영화의 기획을 가리킴과 동시에 그 주제의식을 전하는 영화적 형식미를 요약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특기할 수 있을 법한 장면이 있다. 2부의 어느 순간. 고급스러운 실크 드레스를 길게 늘어뜨리며 부산국제영화제의 레드카펫을 거니는 소리의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에 방영된다. 그 모습을 안방에서 감상하며 즐거워하는 소리의 딸앞에서 소리는 입술을 앙다물며 텔레비전으로 다가가 전원을 끈다. 일상적인 톤으로 진행되는 영화에 과한 해석을 덧붙이는 것이 현명한 길이 아니라고 할 지라도 이 장면에서 텔레비전 속 소리와 안방의 후줄그레한 소리의 모습 사이의 괴리는 의미심장하다. 그 영상의 괴리는 바로 전 장면까지 소리가 여배우이기에 착용해야했던 선글라스, 짙은 화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리를 둘러싸왔던 여배우의 가장된 이미지들과 한데 엮이며 유사한 형상의 계열을 형성하고 있다. 결국 화면을 끈다는 소리의 행위는 항상 여성들이 왜곡된 이미지로 대상화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담아낸 이 사회의 투시도를, 그리고 추가적으로는 감독과 관객의 시선에 복속되어 정해진 역할만 연행해야 하는 배우의 존재론을 넘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하는 문소리의 감독 데뷔에 대한 메타적인 진술을 전경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말장난을 조금 해보자면 <여배우는 오늘도>를 곧 '문소리의 목소리'에 대한 영화라 요약하고 싶다.  





3.  

첫 문단에서 간략하게 말한 영화의 세 번째 장을 상기할 차례다. 장례식장에서 소리는 무명감독이 생전에 촬영한 영상들을 모아보는데 그 영상들은 감독 개인의 영화들도 아닐뿐더러 작가주의적인 자질이 빛나는 특별한 클립들이라 말하기도 어렵다. 대신 그것은 감독이 촬영한 가족들의 일상적인 모습들, 그리고 곳곳의 여행지에서 긁어모은 서정적인 이미지들의 콜라주다. 그 화면이 투영되는 벽으로 카메라가 트래블링하더니 어느새 그 영상이 <여배우는 오늘도>의 화면이 된다. 이윽고 그 화면을 바라보는 소리의 붉은 눈시울에서 울음이 터져나온다. 구체적인 설명을 생략하고 도약하는 이 실험적인 화면도 당황스럽지만 그 당황스러움을 배가하는 요소가 있다. 바로 극중에서 장례가 치뤄지고 있는 감독의 정체가 모호하다는 사실이다. 문소리 본인뿐만 아니라 많은 인물들이 이전까지 극중에서 실제 자신을 연기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더더욱 어리둥절하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영화가 선글라스와 텔레비전과 같은 스크린 이미지를 동원하며 한 인물의 존재론적 괴리를 드러냈다는 사실을 단서로 삼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단서에 기반해서 추측하자면, 어쩌면 (배우-문소리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제작한 작품으로 스스로가 정체화되곤 하는 한 영화감독이 남긴 희소한 사적 영상에서 우리는 우연히 그의 알려지지 않은 면모를 발견해내고 있다. 그리고 그 화면을 촬영한 감독이 익명의 예술가의 정체성으로 모호화될 때, 우리는 그들의 고뇌를 기억하려는 문소리의 고별사를 보는 것이기도 하다. 나아가 그 화면이 영화의 스크린으로 확장하면서 문소리의 시점과 포개질 때, 감독 문소리는 감독 데뷔에 대한 스스로의 불안을 자의식적으로 내보인 것이라고까지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모호함이 영화의 균질한 톤을 깨트린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말해서 여기에서 우리는 감독 문소리의 작가주의적인 행보를 고대하게 만드는 여지를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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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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