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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란도란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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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도란도란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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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OF 발견과 주목 | 일상 속의 성정치학

<퀴어의 방>, <통금>

일시 2018년 8월 14일(화) 오후 7시 30분

관객과의 대화 

참석 권아람, 김소람 감독 

진행 이도훈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관람료 7,000원 (인디스페이스, 인디다큐페스티발 후원회원 무료 / 인디스페이스 멤버십 6,000원)


사회적으로 너무 당연시되는 어떤 것들이 숨쉬기조차 어려운 억압으로 다가오는 존재들이 있다. 이를테면, ‘원가족과 함께 살며 커밍아웃하지 않은 대부분의 퀴어들’이 그렇고, ‘밤을 즐길 권리를 침해당한, 부모로부터 아직 독립하지 못한 미혼 여성들’이 그렇다. 그들에겐 ‘일상’이 전쟁터나 다름없다. <퀴어의 방>과 <통금>은 그 ‘정상이라는 이름으로 작동하는 거대한 비정상적인 힘’에 대한 질문과 도전의 기록이다. <퀴어의 방>이 취하고 있는 ‘경청의 미학’과 <통금>이 취하고 있는 ‘수행성의 미학’, 두 작품은 이렇듯 서로 다른 방법론과 스타일을 지니고 있지만, ‘사적인 것의 정치성’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예증하는 작품들이기도 하다.



 예매하기 

맥스무비 http://bit.ly/2vULqyh

예스24 http://bit.ly/an5zh9

다음 http://bit.ly/2qtAcPS

네이버 http://bit.ly/OVY1Mk




<퀴어의 방

권아람 | 2018 | Color | 29min

18회 한국퀴어영화제

14회 인천여성영화제

23회 인디포럼

23회 서울인권영화제

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9회 대구사회복지영화제

18회 인디다큐페스티발 개막작


 SYNOPSIS 

퀴어의 방에 들어간다.



<통금

김소람 | 2018 | Color | 40min

18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14회 인천여성영화제 

18회 인디다큐페스티발 초청


 SYNOPSIS 

‘나’는 통금 때문에 괴롭다. 밤을 즐길 권리를 침해당한다. 통금으로 인해 좋은 사람들과 술 마실 권리, 남자친구와 사랑을 나눌 권리, 그리고 새벽 감성에 밖에서 촬영할 권리를 박탈당했다. ‘밤을 즐길 권리’를 찾기 위해 우여곡절 끝에 독립하게 된 ‘나’. 하지만 그렇게 즐기고 싶던 밤은 무서운 밤이 되었다. 혼자 사는 여성은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쉬웠고 그럴수록 집으로 가는 밤거리는 무서웠다. 아무리 늦어도 한시 전에 집에 들어가게 된다. 또 다른 형태의 통금이 생긴 것이다. 통금은 부모들만 강요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여성들은 다양한 이유로 시공간의 제약을 받고 있었다. 유독 여성들에게만 시공간의 제약이 많을까? 주변인들을 만나며 각기 다른 형태의 통금을 파헤쳐보기로 했다.



Posted by indiespace_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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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화영>  한줄 관람평


이수연 | 치기 어린 몸부림에 덧씌워지는 폭력의 이미지. 과하지 않을까.

박마리솔 살아남는 법을 배우기 위해 치러야 했던, 세상이 무너지는 경험

임종우 | 지독하게 괴롭고 외롭다

윤영지 | 상처받지 않기 위해 상처 주어야 하는 역설








 <박화영>  리뷰: 지독하게 괴롭고 외롭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임종우 님의 글입니다. 




<박화영>은 여러모로 의문스러운 영화였다. 특히 영화 안의 부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무언가의 없음은 어떤 것의 홀로 있음을 강조한다. 영화 <박화영>은 제목처럼 박화영이라는 인물 한 명을 겨냥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화영은 끊임없이 고립되고 배제된다. 영화는 박화영의 관계를 이렇게 소개한다. 엄마는 없지만 있고, 친구는 있는데 없다고 말이다. 결과적으로는 모두 없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영화의 없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없음은 때로는 부자연스럽고 때로는 잔인하기까지 하다. 박화영은 소위 가출팸이라 불리는 커뮤니티 안에서 엄마를 자처한다. 그는 엄마라 불림을 즐기며 동료들은 박화영을 엄마라 호명하며 집단을 이룬다. 그러던 중 은미정은 질문한다. ‘엄마의 엄마는 어떤 사람이냐고 말이다. 박화영은 그저 자신을 닮았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가 재현하는 닮은 점은 그저 흡연자라는 사실뿐이다.

 

박화영의 엄마는 어떤 사람인가. 박화영은 왜 가출했는가. 영화는 박화영의 엄마를 의문의 인물로 형상화하면서 가출의 원인을 명시하지 않는다. 이는 박화영이라는 인물에 이입할 수 없도록 만드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청소년의 일탈 혹은 비행의 원인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으려는 윤리적 선택의 결과다. <박화영>은 폭력과 윤리를 동전의 양면처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또 다른 부재의 주인공은 박화영의 동료이자 연예인 지망생 은미정이다. 나는 놀라울 정도의 은미정의 망각이 의심스럽다. 그는 살인 사건의 기억도, 폭력의 기억도, 엄마라 지속해서 호명했던 기억도 모두 잃은 것일까. 아니면 일부러 발언조차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일까. 영화는 전자에 기울어져 있다는 점에서 기이하다. 은미정의 떠남으로 박화영은 완전히 고립된다. 은미정의 삶 또한 어느 누구도 알 수 없고 어느 누구도 알고자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이 질문을 계속 떠올렸다. 폭력을 재현했다는 이유로 영화를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이미 폭력을 재현했다. 영화가 폭력을 재현하지 않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의문은 재현의 방식 혹은 서사의 구성 방식에 있다. 인물 박화영과 영화 <박화영>은 폭력의 스펙터클 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폭력의 스펙터클은 문제의 원인의 부재와 동료의 망각에 의해 강력해진다. 지독하게 괴롭고 외롭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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