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연대기 한줄 관람평


이지윤 | 피의 연대(年代)로 또 다른 연대(連帶)를 이야기하다

박범수 | 섹스와 젠더의 굴레에 맞서는 유쾌한 앎의 투쟁, 그 안에 굳건히 자리한 인간 이성의 진보에 대한 믿음

조휴연 | 비로소 말할 수 있게 되다

최대한 | 잔잔한 물결이 파도가 되기를

이가영 | 사회적 금기를 넘어 인류학적 성찰에 이르기까지

김신 |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을 긍정하기 위해서, 스크린 너머의 타자를 긍정하기 위하여 영화와 역사는 진보해야만 한다

남선우 | 축 탄생! 우리 생애 첫 생리 도감







 <피의 연대기 리뷰: 잔잔한 물결이 거대한 파도가 되기를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대한 님의 글입니다.






# 잔잔한 물결이 거대한 파도가 되기를

 

우리는 사회의 심층적인 문제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사회 다큐멘터리라고 부른다. 찰스 퍼거슨의 <인사이드 잡>(2010)처럼 자본주의를 다루거나 김일란, 이혁상 감독의 <공동정범>처럼 국가폭력을 다루는 것만이 사회 다큐멘터리인 것은 아니다. 표면적으로 장엄하고 거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지만, 김보람 감독의 <피의 연대기> 역시 사회적 다큐멘터리의 한 종류이다. <피의 연대기>왜 한국 여성들만 생리대를 사용할까?’라는 작은 궁금증으로부터 여성의 인권을 대변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확장해나간다.

 




 



# 간접적으로 여성들의 고통을 공감하면서

 

27살이 되기까지 어느 누구도 여성들의 생리에 대해서 알려준 적이 없었다. 사실 크게 관심도 없었고 차마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 없었다. 생리에 대해서 아는 것은 미미했다. 약 한 달을 주기로 생리를 하고 생리 기간 동안 고통스럽다는 것뿐이었다.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들을 비롯해 세상 구성원의 절반이 여성이고 생리를 경험하는데, 그 사람들의 고통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무식했던 본인에게 <피의 연대기>는 간접적으로나마 여성들의 생리에 대해 알려준다. <피의 연대기>는 생리대의 역사에 대해 다루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가장 큰 충격을 선사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과거에도 현재와 같은 생리대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거의 여성들은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생리대와 투쟁해왔고 오랜 투쟁의 결과물로 현재 사용하는 생리 용품이 등장할 수 있었다.

 

남성으로 살면서 여성들의 이러한 고통에 완전한 공감을 할 수 없지만, 이제는 조금이나마 그녀들의 고통을 공감하고 귀 기울일 수 있을 것만 같다.

 

 





 

# 모션그래픽과 다큐멘터리의 콜라보

 

최근 많은 영화들이 관객들을 사로잡는 방법으로 모션그래픽을 채택한다. 개인적으로 봉준호 감독의 <옥자>(2017) 오프닝 시퀀스에서 등장한 모션그래픽이 인상적이었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어떤 모션그래픽보다 다이나믹한 박자감을 갖고 있었고 이를 활용하여 기존의 프레임과 또 다른 하나의 프레임을 자유롭게 이동한다는 측면에서 미학적인 아름다움도 가지고 있었다.

 

<옥자>의 모션그래픽이 미학적인 측면에서 인상적이었다면 <피의 연대기>에서 사용되는 모션그래픽은 기능적인 측면에서 인상적이었다. 오프닝 시퀀스가 끝난 후 적당한 리듬감으로 펼쳐지는 파스텔톤 텍스트 그래픽은 산뜻하고 편안하게 관객들에게 다가간다. 이어 모션그래픽이 주는 편안함으로 생리에 대한 거부감을 상쇄시키고 관객들에게 다가간다.


이러한 효과는 김보람 감독의 철저한 계산을 통해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김보람 감독은 한 인터뷰를 통해 <피의 연대기> 제작과정에서 주된 방향성 중 하나가 긍정적 느낌을 주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를 위해 사용한 도구 중 하나가 모션그래픽인데, 이 적합한 도구를 통해 남성에게는 금기 같았던 생리라는 소재를 가볍게 전달한다.

 


 

 




# 작은 궁금증에서 확장하다

 

<피의 연대기>는 김보람 감독의 사소한 궁금증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네덜란드 친구 샬롯에게 생리대 주머니를 선물한 적이 있다. 평생 탐폰을 사용해왔던 샬롯은 생리대 주머니에 대해 신기해하고 의아해했다. 김보람 감독은 ‘왜 한국 여성은 생리대를 쓰고, 서구 여성들은 탐폰을 사용하는 걸까?’라는 궁금증으로 <피의 연대기>를 시작했다.

 

이 작은 궁금증에서 시작된 <피의 연대기>는 점진적으로 이야기를 확장해 나간다. 그녀의 작은 궁금증이 생리를 하는 여성들의 고통, 인권, 투쟁의 역사로 이어진다. <피의 연대기>는 미약한 궁금증으로 시작했지만, 끝은 전 세계의 반절인 여성들의 고통을 대변하면서 끝이 난다.

 

 

<피의 연대기>는 최근에 본 가장 이상적인 다큐멘터리였다. 김보람 감독은 사소한 궁금증을 시작으로 극을 진행해 나간다. 이러한 방식은 다큐멘터리는 소수의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앞으로 김보람 감독과 제작진이 어떤 시선으로 새로운 다큐멘터리를 만들어갈지 궁금하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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