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입이 달린 얼굴 한줄 관람평


이지윤 | 결국 혼자 남을 수밖에 없는 이 세상에서

조휴연 | 위계화된 가난이 사람의 얼굴을 지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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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 | 병든 사회 속 영화는 앓는다

남선우 | 사연은 사람 안에 숨어 산다






 <파란입이 달린 얼굴 리뷰: 어깨 위로 올라탄 가난과 시선을 지고



*관객기자단 [인디즈] 조휴연 님의 글입니다.





가난을 접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통계다. 남녀, 장애인과 비장애인, 소득 상위 10%와 하위 10%,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격차, 부채수준, 부동산의 규모와 구성내용, 부동산을 마련하는데 걸리는 시간 등. 그 통계들이 모이면 가난에도 위계가 잡힌다. 가난한 사람들은 위계화된 가난 안에서 살아간다. 위계화된 가난은 통계와 같이 간단하지 않다.


 



'서영'은 가난의 위계에서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 사람이다. 여성이면서 가장이고 가족들의 경제력은 전무하며 본인은 비정규직-저임금 노동자다. 어머니의 병원비로 인해 빚도 있다. 취향이랄 것도 없다.(생길 수 있는 계기가 없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영화 내에서 헐렁한 가방을 매고 다니는 서영의 어깨가 유난히 처져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언급한 가난의 위계들이 모두 서영의 어깨 위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가 닿은 인쇄소에서의 생활도 서영에게 쉽지만은 않다. 스님의 도움으로 인쇄소에서 일하게 됐지만, 스님은 인쇄소에서 서영으로 하여금 생활만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서영은 위계에 짓눌린 채 서영의 위계를 멋대로 해석하는 사람들의 시선까지 짊어진다. 혼자 밥을 먹는 서영을 보고 이상하다고 피하거나 같이 있는 자리에서 나 같으면 엄마에게 그렇게는 못하겠다며 큰 소리로 혼잣말을 하는 식이다. 어떤 과정을 거쳐 서영이 엄마에게 떠나라고 말하게 됐는지 관심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서영이 할 수 있는 발버둥은 거짓말과 물건을 훔치는 것 정도다. 서영의 오빠가 밤길을 걸어가는 동안 서영에게 일터에서 만난 여자와 잘 될 수도 있다는 거짓말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영화 중반에서 등장하는 탁구라는 소재를 통해 가난의 위계에 짓눌린 서영에게서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억지로 끌려오듯 한 회사 내 탁구 동아리에서 서영은 의외의 재능을 발견한다. 이 재능이 회사 동료들과 서영 사이의 인간적인 유대를 가능하게 한다. 동료들과 같이 밥을 먹기도 하고 술자리에 얼굴을 비춘다. 항상 입는 바지와 티셔츠가 아니라 원피스를 입기도 한다. 인간적인 삶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정도는 아니라도 이런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웃음을 보인다. 영화 전반에 걸쳐 말라 죽은 나무 같던 서영의 모습은 그녀가 선택한 게 아니라 켜켜이 쌓은 가난의 위계가 만들어준 것임을 알 수 있다.

 

서영이 에어로빅 동아리를 꾸려 탁구 동아리 사람들의 모임을 방해하는 장면에서는 위계화한 가난이 얼마나 쉽게 한 사람의 인간적인 유대를 깨뜨릴 수 있는지 보여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같이 먹고 놀던 사람들과 계속 같이 다니면 밥줄이 끊길 수 있겠다고 생각한 서영은 다시 표정을 지운다. 사람들과의 식사 자리, 요리를 잘 한 다는 칭찬에 어렸을 때부터 혼자서 먹고 다녔어야 해서요라는 서영의 대답은 그녀의 인생이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단서다. 먹고 사는 일, 생활해 나가는 일이 가장 중요한 목표다. 다른 일들은 끼어들 수도, 끼어들어서도 안 된다.







구조화한 가난을 그대로 바라보는 일은 불편함을 수반한다가난은 원래 불편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바라보는 일은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다서영이 겪는 수준의 가난을 바라보는 일은 더더욱 그렇다하지만 가난이 편하게 읽혀서는 안 된다편하게 읽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어려운 문제는 어렵게있는 그대로 표현해야 한다. <파란입이 달린 얼굴>은 이 점에 충실했다한국에서 가난을 다룬 영화들 중에서도 의미 있는 위치를 확보했다고 할 수 있는 이유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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